◎수출경쟁력·빠듯한 외환보유고 고려 소극적 대응/통화가치 폭락사태 우려 무작정 방관도 못해 고심치솟는 환율의 수위조절을 놓고 외환당국이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미국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의 급상승을 그래로 놔둬야 할지 아니면 저지해야 할지, 또 어느 선에서 용인 혹은 저지해야 할지 선택이 용이치 않는 상황이다.
20일 금융계에 따르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전인미답의 「1달러=900원」벽까지 무너뜨린 환율은 현재 아주 강력한 상승(절하)압력을 받고 있다. 우선 외국인주식자금 유입(자본수지흑자)에도 불구, 실질적 화폐가치를 결정할 경상수지는 여전히 적자기조여서 원화가치는 계속 추락하여 환율이 치솟고 있다. 해외차입여건 악화로 외환시장엔 달러의 절대량 부족에 사재기까지 겹쳐 환율상승압박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특히 동남아 외환위기가 한국으로 「북동진」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은 환율상승(원화가치하락)을 심리적으로도 부추기고 있다.
이처럼 경상수지적자, 해외차입차단, 동남아위기 등 세갈래 상승기류를 한꺼번에 받고 있는 환율의 급등현상을 외환당국은 일단 용인하는 분위기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환율이 순식간에 900원에 근접하는데도 당국의 저지의지는 매우 약했다』고 말했다.
당국이 이처럼 환율상승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까닭은 무엇보다 수출경쟁력 때문. 태국 바트화환율이 작년말보다 20.4% 상승한 것을 비롯, ▲인도네시아(루피아화) 20.7% ▲말레이지아(링기트화) 9.7% ▲필리핀(페소화) 12% ▲싱가포르(싱가포르달러화) 7.7% 등 동남아국가들은 최근 외환위기속에 대폭적 환율상승이 이뤄진 상태다. 무역경쟁국들이 환율상승으로 엄청난 수출가격경쟁력을 획득한 이상 우리도 어느 정도는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게 외환당국의 입장이다. 한은관계자는 『수출이 회복되는 상황에서 경쟁국의 환율반사이익을 보고만 있을수는 없다』고 말했다.
당국이 환율을 끌어내리지 못하는 데에는 또다른 속사정이 있다. 환율조절용 「실탄」, 즉 외환보유고가 넉넉치 못하다는 점이다. 7월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337억달러로 매우 빠듯한 편인데 이달들어 12억달러를 금융권에 긴급수혈하는 등 외환비축사정은 점점 나빠지고 있어 환율상승을 저지하고 싶어도 여력이 여의치 않는 상태다.
하지만 딜렘마는 무작정 환율상승을 용인할수는 없다는 점이다. 수출만 놓고 보면 추가상승도 무방하겠지만 현재의 절하압력강도는 자칫 환율을 걷잡을 수 없는 선까지 밀어부칠지도 모른다는게 일반적 분석이다. 한 당국자는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남아있던 외화자금까지 빠져나가 동남아같은 통화가치 폭락사태가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환율상승의 일차 저지선은 달러당 900원선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외환시장의 달러고갈사태가 심화하고 동남아국가들의 환율상승 및 엔화의 약세반전이 지속된다면 「마지노선」은 후퇴할 확률이 높지만 외환위기 가능성도 비례적으로 높아진다. 보유외환이 넉넉치 못한 당국으로선 이래저래 곤혹스런 상황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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