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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 ‘겨울,아틀란티스’(황종연의 소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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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 ‘겨울,아틀란티스’(황종연의 소설 읽기)

입력
1997.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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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과 논리 탄탄히 갖춘 메타픽션의 새로운 개가최윤의 다른 소설에서 그렇듯이 「겨울, 아틀란티스」에서도 작중 인물들에게 특징적인 것은 산책이란 행동이다. 이학, 한진영이라는 인물은 거리를 한가로이 걸어다니는 모습을 버릇처럼 연출한다. 산책은 도시적 삶의 일반적인 토포스이지만 「겨울…」의 특수한 맥락에서 그것은 어떤 결핍을 나타내는 증후가 된다. 외로움과 공허감에 시달리는 젊은 여성 이 학과 기억과 함께 자아를 잃어버린 중년의 성악가 한진영은 서로 분신의 관계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본질적으로 유리된 삶을 공통으로 살고 있다. 그들이 반복하는 산책은 그들의 유리된 삶의 형식에 대한 환유와도 같다.

「겨울…」의 스토리는 한진영의 감시자이자 보호자의 역할을 위탁받은 이 학의 도움으로 한진영이 회상의 미로를 빠져나와 자기를 회복하게 되는 사건들을 포함한다.

흥미로운 것은 한진영의 자기 회복이 장기영이란 작가의 소설들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 그녀 자신의 체험의 파편들을 수습하는 방식으로, 다시 말해 이야기 꾸미기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야기란 말처럼 들리는 이름인 이 학은 바로 기억에 장애가 있는 한진영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꾸며주는 일을 맡고 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그 정체성의 구성은 서사의 효과라는 폴 리꾀르의 명제를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사실, 「겨울…」에서 중요한 것은 한진영의 스토리라기보다는 그것에서 촉발된 이 학의 소설경험과 반성이다. 장기영의 소설이 야기한 많은 의문을 둘러싸고 이 학이 펼치는 상념들은 소설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담고 있다. 현실과 허구, 창조와 모방 같은 소설학의 논제들과 씨름하면서 이 학은 소설의 역능을 확인하고 스스로 글쓰기에 투신하기에 이른다. 그녀가 인식한 글쓰기는 존재를 분열과 망각 속에 빠뜨리는 진화의 시간에 반하는 소행, 부재하는 존재의 기원 혹은 진실을 찾아나서는 여행이다. 산책의 등가물인 그러한 글쓰기는 글들이 모여 이루는 환상의 회로 속을 배회한다.

「겨울…」에 제시된 소설의 이미지는 경탄할 정도로 아름답다. 젖은 원고지의 글자들에서 풀려나온 빛깔로 푸르게 변하는 물, 그리스 신화 속의 섬 아틀란티스를 품고 있는 바닷속의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그것은 사라진 낙원을 꿈꾸는 인간의 원망과 하나가 된다. 「겨울…」은 소설에 관한 소설이 요구하는 품격과 논리를 탄탄히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소설에서는 유례가 드물다.

한마디로 메타픽션의 새로운 개가이다.<문학평론가·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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