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구 중고생 102명 ‘체험,삶의 현장’ 참가 4일간 농촌봉사활동/고추따기·호박씨심기… 너무 힘들어 한때 포기 “이젠 밥 안 남길래요”『태어나서 이런 고생은 처음이에요』
한낮은 지났지만 땡볕이 여전한 9일 하오 4시 경기 여천군 흥천면 외사3리의 한 텃밭. 중고생 13명이 호박지주를 세우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서울의 구로시민센터가 7∼10일 실시한 「체험, 삶의 현장-청소년농활」에 참여한 학생들이었다. 얼굴과 팔뚝은 벌써 벌겋게 익어있었다. 농사일이 처음인 이들에게는 땅에 나무막대를 박고 호박넝쿨을 끈으로 감아올리는 간단한 일도 쉽지 않다. 그래도 논에서 피뽑는 일에 비하면 약과. 맨발로 논바닥에 들어갔을때의 생경한 느낌은 차치하고라도 논을 헤매고 다니다보면 팔다리에는 벼에 쓸린 상처가 회초리자국처럼 남았다. 이 농촌봉사활동에 참석한 학생은 영서중 금천고 한강전자공예고교 등 구로지역의 중고등학생 102명. 그중 71명이 여학생이다. 이들은 매일 새벽 5시30분에 기상, 상오 7∼11시, 하오 4∼7시 등 하루에 7시간씩 고추나 깻잎따기, 호박씨 심기같은 농사일을 했다.
이들이 농활에 참여한 것은 방학과제로 부여된 자원봉사 의무할당시간(15시간)을 채우기 위해서였지만 뜻깊은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고생은 각오했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첫날에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이영선(오류여중 2년)양은 말했다.
고된 일과 짧은 수면시간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깔끔이 여학생들이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옷도 갈아입기 어렵다는 점. 마을주민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마을회관과 직접 지은 비닐하우스를 단체숙소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입이 까다로운 아이들은 마른 멸치조림과 된장찌개가 고작인 식사대신 라면이나 빵을 사다 먹기도 했다. 평소 습관대로 아침을 먹지 않겠다는 아이들도 많아 『아침을 굶으면 일을 할 수 없다』고 설득하느라 지도교사들이 애를 먹기도 했다.
이틀째에는 여학생 몇명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나섰다. 학생지도를 맡은 김치관(구로시민센터 기획실장)씨는 『살다 보면 힘든 때가 한두번이 아닌데 그때마다 도망갈 것이냐』고 설득했다. 다행히 오후휴식 뒤 이들은 마음을 바꿔먹었다.
귀가를 하루 앞둔 9일에는 낮동안의 휴식 시간을 이용, 「편지쓰기」를 했다. 받을 사람은 한달 뒤의 자기자신. 학생들이 쓴 편지를 주최측이 모아두었다가 한달 뒤에 보내준다. 나무그늘에 흩어진 아이들은 등을 구부리고 앉아 자신과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지난 며칠 동안의 일 뿐아니라 진로, 교우관계 등 학교에서의 고민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여기서의 고생에 비하면 학교에서 겪었던 어려움은 다 사소하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박미희(금천고2)양은 『농사짓기가 이렇게 힘든줄 알았으니 돌아가서는 밥을 절대로 남기지 않겠다』고 털어놓았다.
『흥사단과 구로시민센터에서 6년째 농촌봉사활동을 지도하면서 청소년들을 성장시키는 데는 농활만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는 김송희(구로시민센터 청소년담당)씨의 얘기처럼 청소년들은 노동의 의미와 자기 극복의 기쁨을 확실히 배운 셈이다.<김동선 기자>김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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