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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의 기쁨은 어느덧(동창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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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의 기쁨은 어느덧(동창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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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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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날이 그렇게 올 줄은 정말 몰랐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그날이 벅차게 감격스러운 날이 되었으리라고 믿는다.36년 동안이나 우리를 때리고 밟고 누르면서 못살게 굴던 일본이 1945년 8월15일에 패망할 줄만 미리 알았던들 일제의 상징인 서대문 감옥에서 그날을 맞이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 날이 올 것을 미리 알기만 했으면 감방에서 5년 아니라 10년이라도 참고 기다릴 수 있었을 것이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중에도 변절해버린 인사들이 있었다는 것은 참고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우리에게 일러주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나무가 크면 바람도 많이 맞게 마련이라는 속담도 있지만 굵직한 민족의 지도자들이고 보면 유혹이나 핍박이 엄청났으리라고 짐작되지만, 40년대 전반, 즉 해방 5년전부터 시작된 일제의 공갈과 협박, 감언과 회유에 못이겨 조국을 배반한 사람들은 해방이 되던 날 크게 후회하였으리라고 믿는다. 좀더 참고 기다릴 것을.

해방과 더불어 남북이 분단된 것은 우리 민족사의 커다란 비극이었다. 38선을 경계로 북에는 소련군이 달려오고 남에는 미군이 들어섰는데 이념과 체제가 극에서 극이라 어느 쪽도 절대 양보는 불가라는 입장이어서, 『민족은 하나이다』라고 우리가 아무리 외쳐도 사상이나 이념이나 체제는 초월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아야 했다.

남북간에 전쟁이 터진것은 해방이 되고 겨우 5년 뒤의 일이었다. 그러나 북은 적화통일을 위해 군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준비를 갖추고 있었으므로 국군의 힘만 가지고는 도저히 북의 남침을 감당할 길이 없었다. 한반도의 남쪽과 거기 사는 3,000만명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유엔군의 상륙이 불가피하였다. 밀고 밀리고, 쫓고 쫓기던 3년간의 혈투, 그리고 나서 얻은 것은 휴전선과 판문점, 통일의 날은 점점 멀어만 지고 해방의 감격은 점점 식어만 가고 있었다.

김일성이 내세운 민족의 주체성은 극히 배타적인 유일사상으로 변질되었고 마침내 북의 2,000만 동포를 완전히 국제사회에서 고립시켰으며 굶주리고 헐벗은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만들어버린 셈이다. 그들은 김일성이 하느님인줄 잘못 알았고 막상 그가 세상을 떠나니 버림받은 백성이 된 것으로 착각하고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얼굴에 병색이 짙은 그의 아들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는데 또한번 전쟁을 터뜨릴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것만 같아보인다.

북의 인민공화국과는 달리 남쪽의 대한민국에서는 틀만은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면서 변질된 독재가 판을 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정권마다 불행하게 끝났고 임기를 채우고 청와대를 살아서 걸어나온 대통령들은 경기 의왕의 구치소나 안양의 교도소에 수감될 수 밖에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어느 한 대통령도 처형되는 비운은 면할 수 있었으니 그만큼은 민주주의의 상식이 살아있는 나라라고 해야 옳을 것인가. 사회의 기강이나 질서는 다 무너졌지만 경제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서는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춤을 추더니, 중소기업은 더 말할 나위도 없고 기아니 대농이니 진로니 하는 대기업들이 줄지어 쓰러지는 꼴을 유심히 바라보면, 번영도 한갓 거품에 지나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된다.

일종의 절망이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휩쓸고 있다고나 할까. 북쪽 동포는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고, 남쪽 동포는 아직 배는 부른데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기 때문에 생존의 의욕이 줄어들고 있다. 몇 푼 저축해봤자 아무리 세월이 가도 13평짜리 아파트 하나 차지할 가망도 없으니, 가자·놀자·먹자·마시자의 사자담합으로 치닫는 것인가. 해방 52주년의 조국이 그 벅찬 감격과 기쁨을 다 잃어버리고 오늘 이 겨레는 세계 속에서, 역사 앞에서 이토록 초라한 꼴이 되고 말았는가.

그래서 나도 시인 김기림과 더불어 『우리들의 팔월로 돌아가자』고 울부짖고 싶은 심정이다. 『명예도 지위도 호사스런 살림 다 버리고/ 구름같이 휘날리는 조국 깃발아래/ 다만 헐벗고 정성스런 종이고자 맹세하던/ 오 우리들의 팔월로 돌아가자』 해방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분단의 슬픔만 남은 이 때, 우리는 「우리들의 팔월」로 돌아가야만 산다.<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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