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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죽음의 형식/이윤택 작·연출(화제의 연극 숨겨진이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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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죽음의 형식/이윤택 작·연출(화제의 연극 숨겨진이야기:3)

입력
1997.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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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스럽다… 신선하다… 양극 평가속 흥행엔 ‘효자’/장례의식 소재 3일만에 탈고/무대 올릴때마다 주위선 상당해 ‘기연’「아웃사이더」는 연극판에도 있다. 이들의 작품은 통상 리얼리즘과 거리가 멀다. 관점에 따라 실험과 난장의 경계조차 모호하다. 개인적으론 비사교적이고 「누구의 제자」라는 계보를 따지기 어려울 때가 많다.

문화게릴라로 불리는 이윤택이 그렇다. 시, 평론, 시나리오, 방송대본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활동력, 지방출신에 독학의 이력, 논쟁을 두려워 않는 다혈질이 그를 설명해 준다. 부산생인 그는 경남고 졸업 후 서울연극학교(서울예전의 전신)에 입학, 딱 6개월을 다녔다. 스승은 연출가 오태석. 낙향한 뒤 연극 두어 편에 밑전이 거덜났다. 86년 연희단거리패를 창단해 연극판으로 돌아오기까지 그는 멀리 에둘러가는 길을 걸었다. 도서 외판원, 술집 웨이터, 우체국 서기보, 한일합섬 염색가공기사, 한전 서무직원, 부산일보 편집기자. 7년간의 신문사생활이 그나마 안정적이었고 「배반을 꿈꾸던」 세월이었다.

이러한 그가 연극중심지 대학로에 본격 합류하게 된 것이 「오구―죽음의 형식」(이하 「오구」)을 통해서다. 89년 초연 연출은 채윤일. 채윤일은 이윤택에게 희곡을 쓰도록 추동하고 무대에 올림으로써 지방연극인을 중앙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시민 K」 「오구」 등 채윤일에게 주려고 쓰여진 희곡들은 공교롭게도 이윤택의 연출로 성공을 거둔다. 이후 연출가 김광림이 이윤택과 함께 우리극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연희단거리패는 서울시대를 열고 이윤택은 연극 본류와의 신나는 충돌을 시작한다.

「오구」에 대한 평가는 양 극단에 걸쳐 있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우리의 장례의식을 소재로 삼았고, 죽음의 의식 속에 숨쉬고 있는 연극적 요소를 그리고 있다. 90년 이윤택 연출로 공연 때 저승사자 셋이 과장된 성기를 내놓고 덜렁거리며 등장하자 몇몇 원로배우들은 당장 자리를 박찼다. 『불경스럽다』. 평론가 이상일 교수와 굿의 연극화에 대해 격렬히 부딪친 「굿논쟁」도 일었다. 반면 일본 도쿄(동경)국제연극제와 독일 에센국제연극제 등 해외에서는 『기성의 권위에 대한 싱싱한 도전』이라는 평을 받으며 팔려나갔다.

이윤택은 『「오구」는 일상생활에 존재하고 있는 연극성을 「발견」해서 「재구성」함으로써 한국관객들의 가장 보편적 심성을 자극하는 연극』이라고 정리했다. ‘오구’는 세계연극제에 참가하는 올해까지 거의 해마다 재공연됐다. 그때마다 「대박」이 터져 극단을 위기에서 구해준 효자 레퍼토리다. 20∼30명이 출연하는 대작이어서 흩어진 단원을 모아 새 판을 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올초에도 몇몇 고참단원들이 탈단해 위기감이 돌았던 극단은 「오구」를 통해 재기했다. 상경 후 처음으로 독립된 보금자리(명륜스튜디오)도 마련했다. 이윤택이 온몸에서 열이 나 알몸으로 타이프와 씨름하다 집주인인 시인 여후배를 어지간히 놀라게 하며, 단 3일만에 탈고한 「오구」. 무대에 올릴 때마다 어김없이 이윤택 자신을 포함, 주위에서 꼭 상을 당하는 기연을 가져왔지만 다행히 호상뿐이었다.<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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