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뉴스에 일본이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격상시키는 것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아직도 일본에 관한 이같은 정보가 뜻있는 한국인들에게 뉴스거리로 해석되는 자체가 우리의 현실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한일관계의 실상이다. 이웃나라가 정부조직을 자신들의 의사에 따라 어떻게 하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마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위 방위예산이란 것이 「경제대국」 일본 국민총생산(GNP)의 1%를 넘어섰다는 것, 그래서 핵무기만 안가졌다 뿐이지 국방예산 면에서는 세계 제2위라는 사실 등은 옛날부터 「선한 이웃」이기를 바랐던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이 유엔에서 「대국」으로서의 몸집에 알맞는 세계적인 역할을 감당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요 몇년새에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겠다고 로비를 벌이는가 하면 세계의 분쟁지역에 자신들의 무력을 파송하는 것은 이웃 아시아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징조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일본 지배층에서 주로 행해지던 「망언」들이 최근에는 일본 국민의 전 계층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제는 그 망언들을 스스럼없이 사실로 인정하는 정도가 됐다. 그 망언의 요점은 「한국병합 정당화론」을 비롯하여 식민지 시기에 시혜를 베풀었다는 「식민지 미화론」, 그리고 최근에는 그들의 침략전쟁을 「아시아민족 해방론」 내지는 「성전」으로 미화하는데까지 이르고 있다. 이제는 망언을 합법화하고 있으니 언제 다시 그 망언을 「합법화된 행동」으로 실천할 지 모른다는 우려가 없을 수 없다.
한편 스즈키(영목) 총리 이래 일본의 정부 각료들이 야스쿠니(정국) 신사에 대놓고 참배하는 것에도 우려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식화하느냐 여부를 두고 해마다 이맘때면 뉴스의 초점을 제공했던 일본은 올해도 예외없이 정부 각료중 상당수가 이미 참배의사를 밝혔고 하시모토(교본룡태랑) 총리는 9월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외교적인 마찰을 빚지 않기 위해 참배를 유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국 영령들을 모신」 그 신사에 일본의 총리가 참배하느냐 여부가 뉴스거리가 된다는 것 자체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이 이해하고 있는 「호국 영령」이 이웃나라들에 의해서는 그렇게 해석될 수 없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하시모토 총리가 올해 중국방문 때문에 참배를 유보하겠다고 한 결정에서, 일본정부도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무엇을 뜻하며 이웃이 그런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도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각료들이 신사 참배를 고집하겠다면 그것은 아시아인들의 그런 우려를 묵살하겠다는 어떤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묵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묻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여기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은 더욱 우려할 일이다. 세계화라는 이름아래 영어교육을 초등학교에서 시작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국사교육은 거의 내팽개치다시피 한 이 정권이 저속한 일본문화가 우리 청소년들을 휩쓸고 있는데도 그것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고사하고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선린을 도모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아래 일본문화를 공개적으로 수입하겠다고 하니 나라의 진로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 뿐인가. 이제는 학계의 일각에서조차 저 식민주의사관론자들이 부르짖던 소위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면서 우리가 60년대 이래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 것은 일제시기에 그 기반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런 논리대로 한다면 일제 강점기 조상들의 독립운동은 결국 그러한 「근대화」를 저해한 쇼비니스트들의 반역사적인 행위로밖에는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올 때가 멀지 않았다고 본다. 광복 52주년을 맞으면서 기쁨보다는 이런 걱정이 앞서는 것은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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