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기아 등 재벌그룹들의 연쇄적인 경영파국은 국내금융기관들의 부실화를 증폭시키고 있고 이제는 대외신인도까지 급격히 실추시켜 금융공황의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시장경제론」을 앞세워 관련재벌그룹과 채권은행단의 문제라고 뒷짐을 져 왔으나 이러한 방관적인 자세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켜 왔다고 하겠다. 그러나 정부가 위기상황을 인지, 기아사태의 수습과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제일은행에 대한 구제책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한 것은 바람직하다.기아사태는 뒤늦게나마 타협의 기미가 보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기아측은 김선홍 회장의 사표가 포함된 경영포기각서와 인력감축에 대한 노조 동의서를 제출하는 대신 채권은행단은 현경영진에 대해 자력갱생의 기회를 주고 협력업체에 대한 3,500억원의 지원 등 자금지원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정부와 채권은행단은 서둘러 이 문제를 타결, 금융기관의 경영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비단 기아문제뿐만이 아니다. 한보, 진로, 대농 등 부실재벌그룹의 채무문제가 빨리 해결돼야 한다.
지금 금융기관들은 안팎 특히 외부에서 신뢰가 크게 손상되어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제일은행이다. 올해들어 터진 대형부도사건에 매번 걸려들은 제일은행은 최근 3년동안 거액연체여신이 3조3,500억원에 상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올해만도 한보, 삼미특수강, 진로, 기아 등 2조2,000여억원이 물려 있다. 부실채권급증에 따라 경영적자가 올상반기에 3,565억원에 달했고 현상태가 지속되면 올해 모두 7,000여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자기자본(1조8,450억원)의 37%에 상당한다. 세계적인 유명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제일은행의 신용평가를 정부지원 등 별다른 조치가 없는한 BBB―에서 BB+로 한등급격하시키겠다고 시사했다는 것이다. 이 등급은 금융기관으로서는 치명적인 하위 등급, 해외채권발행은커녕 해외차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재경원의 표현대로 제일은행의 대외신용등급하락은 제일은행 자체의 대외신인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나 다른 금융기관의 신인도에도 파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큰 문제다. S&P사는 제일은행보다 상위 등급에 있기는 하지만 한일, 외환, 신한, 장기신용, 산업, 기업, 수출입 등 시중은행뿐 아니라 국책은행까지 모두 9개 은행들을 「감시대상」에 올려 놓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신뢰의 위기라 하겠다.
급한대로 제일은행에 대해서는 한국은행특별융자 등 긴급구제책이 불가피한 것 같다. 제일은행이 요구한 한은특융규모는 3조원선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자구책의 강화를 조건으로 해서라도 우선 집행해 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러나 정부의 금융위기 대책은 한은특융에 주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된다. 현재의 부도방지협약, 도산그룹의 부동산처분을 위한 성업공사의 확대개편계획 등을 발전시켜 은행이 부실채권을 합리적으로 신속히 정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