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50주년을 맞는 인도의 정치사는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독립을 일궈낸 자와하를랄 네루의 혈통인 「네루·간디」가문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네루가 47년 초대 총리에 올라 병으로 사망한 64년까지 통치하고 그 뒤를 이어 네루의 무남독녀인 인디라 간디(남편 페로제 간디·마하트마 간디와는 혈연관계 없음)가 66∼77년, 80∼84년 등 두차례에 걸쳐 15년간 총리로 재직하며 신생국가의 기틀을 다져 놓았다. 인디라가 숨지자 권력은 장남 라지브 간디에게 승계돼 89년 선거에서 패배하기까지 5년간 총리를 맡았다. 이후 가문이 직접 「전면」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네루가 창건한 국민회의당(CI)내 영향력은 여지껏 지대하다. 3대에 걸친 「네루」가문이 50년간의 인도 현대사 대부분을 주역으로 떠받쳐온 셈이다.가문의 부침은 극심한 빈부격차, 신분제도, 종교갈등 등을 품고있는 인도의 난맥상과도 맥이 닿아 있다. 인디라가 시크 교도 경호원에게 암살당하고 아들 라지브 간디는 91년 5월 총리 재선을 노리는 선거 운동중 스리랑카 평화유지군 파견에 불만을 품은 타밀반군에 의해 폭사했다. 현재 가문의 중심은 라지브의 미망인 소냐에게 옮겨져 있다.
파키스탄에서 버금가는 집안은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가문이다. 그의 조부 샤나와즈가 이슬람종교 지도자로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부친인 줄피카르 알리 부토는 쿠데타가 되풀이 되던 파키스탄 현대 정치사상 최초의 민간정부를 이끌었다. 베나지르는 가문의 명성에 힘입은 「민주투사」이미지로 88∼90년, 93∼96년 두차례 총리를 지냈다. 그러나 권력욕에 따른 집안 싸움과 부패로 부토 가문의 재기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두 가문의 역할에 대한 평판은 엇갈린다. 식민지에서 근대국가로 건너 뛰는 과정에서 「왕가」와 같은 상징적 리더그룹이 필요했다는 지적과 이들의 독재가 낙후성을 심화했다는 찬반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공통적 인식은 두 집안의 침체가 민주화 진척과 관련 있으며 건국 50년으로 국가기틀이 확고해진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더이상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사실이다.<윤석민 기자>윤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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