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공포·죄의식 증상 자아기능 상실 올수도/감상·자조 빠지기보다 주변사람·공동체 나서 환자충격 흡수해줘야놀란 마음을 진정시킬만 하면 또 다시 터지곤 하는 대형사고들로 인해 이제는 사고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일반인의 정신건강까지 걱정할 정도가 되었다. 매체를 통해 사고를 간접적으로 겪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리 허탈하고 참담한데 직접 일을 당한 이와 그 가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끔찍할까.
이런 대형사고를 본인이나 가족들이 겪고난 후 생기는 외상후 증후군의 증상은 크게 1차증상과 2차증상으로 나뉜다. 1차증상으로는 악몽, 분노, 상실감, 폭발적인 경향, 죄의식, 공포 등이 있다. 때에 따라서는 사고를 연상시키는 비슷한 일에 노출되었을 때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착각 환청 등의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는 수도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매사에 흥미가 없고 멍한 느낌에 일부러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듯 보이는 시기가 온다. 사고상황에 대해 기억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가까운 이를 잃었다는 상실감 뿐아니라 그 상황을 피하게끔 하지 못했다거나 나만 살아 남았다는 죄의식 때문에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 급성반응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후에는 2차증상이나 지연반응으로 불안, 죽음에 대한 공포, 충동조절 장애로 인한 폭력행동, 몸 여기저기가 아픈 신체화 경향 등이 수반된다. 경우에 따라 약물중독이나 감각 변화 및 전체 자아기능의 상실이 오기도 한다.
아이들의 경우는 어른과는 다른 증상들을 보인다. 수면장애나 특정대상을 무서워하며 피하거나 불안감을 느끼는 공포장애와 더불어 부모 등 가까운 사람이 언제 자기를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주변사람들에게 더 치대고 칭얼대는 변화를 보인다. 또 상실감과 분노 때문에 비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강박적으로 사고당시에 대해 집착을 한다든지 지나치게 공격적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독재적인 부모들은 이런 고통을 겪는 어린이들이 회복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똑같이 엄청난 사고를 겪더라도 『세상은 사악함과 위험으로 가득차 있는 반면 나는 약하고 무능하다. 또 주위에는 도와줄 믿을만한 사람도 없으니 어디로건 숨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이니 위험하고 해로운 일이라도 상관없다. 참고 애써봐야 뭐 하느냐』며 자포자기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예후가 나쁘다. 반대로 주위에서 든든한 기반과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경우는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입었더라도 다시 재기할 힘을 얻을 수가 있다. 환자 주변의 사람들이나 공동체가 환자가 받은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해주면 그만큼 치료가 빠르다는 소위 「사회적 스펀지이론(Social Sponge Theory)」이다.
사고공화국이라는 자조섞인 비아냥도 적지 않고 이런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 우리 사회에 대한 회복할 수 없는 실망감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우선은 그런 자괴감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기술 문명이 급격한 속도로 발달함에 따라 대형사고와 인재는 훨씬 더 빈발하기 마련인데 그 때마다 나 아닌 누군가를 원망하며 분노를 터뜨린다고 해서 이미 벌어진 사건들이 저절로 수습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식의 참사들을 국민성이나 대충주의 문화와 곧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또 다른 정신적 사대주의나 패배주의와 상통할 위험이 있다.
비교적 사회가 안정되고 여러 안전 예방장치를 잘 마련하고 있다는 서구 나라들도 우리 못지않은 대형 참사들을 여러차례 겪어온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런던 다리 무너진다, 무너진다…」하는 영국 민요가 그냥 생겼겠는가).
이런때일수록 감상과 자조에 빠지지 말고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해결방안들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존자나 가족들이 소그룹 모임을 갖고 서로 도움을 받는 작은 운동에서부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같은 큰 틀을 처음부터 하나씩 재점검하는 일 등. 무슨 일이든 감정이 앞서서 호들갑스럽고 떠들썩하게 한바탕 난리를 친 후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싶게 잊어버리고 만다면 차라리 가만히 있느니보다 못한게 아닐까. 나와 내 가족들에게 언제 어떤 사고와 참변이 일어날 지 모르는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과연 어떤 일을 해야 하며 또 할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하게 되는 때이다.<신경정신과 전문의>신경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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