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스레 부르는 고향의 노래서정시의 기본적인 테마 중의 하나는 「자연」이다. 수많은 시인들이 자연 속에 숨쉬고 있는 아름다운 생명의 질서를 언어화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근대 이후 척박한 도시 공간이 삶의 터가 되고 현대시는 그런 도시적 삶의 조건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물론 이런 현실 때문에 오히려 자연에 대한 동경이 더욱 절실해지고 그 가치가 상승하는 측면도 있다.
새 시집 「그리운 여우」를 낸 안도현 시인은 토착적인 서정성과 농경적 감수성을 섬세한 언어 능력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그는 「나는 지금도 한국의 수도 서울에 살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모든 나는 세상의 중심에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이런 실존적 혹은 시적 자존심이 그를 고집스럽게 고향의 노래를 부르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산서」라는 지명으로 상징되는 그의 시적 공간은 생명의 유기적인 관계가 살아 있는 공간이다. 「우리 동네 앞산은/ 소쩍새를 키운다네」 「송사리떼 거슬러 오르는 일을 가르치려고/ 시냇물은 스스로 저의 폭을 좁히고/ 자갈을 깔아 여울을 만들었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표현들 속에서 자연은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들이고 서로에게 생명의 온기를 전하고 있다. 「그리운 여우」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런 유기적인 공간에서 시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신비를 향해 상상력의 촉수를 움직인다. 그곳에는 도시의 폭력적인 속도전이 없어서 「정미소가 있는 풍경」을 보고 시인은 「지금 그에게는 속도가 없네/ 개들이 똥을 누고 가는 뒤안에서부터/ 개들의 잠자리가 있는 마을까지가/ 마지막 그의 관할구역이라네」라고 노래한다.
그러나 충분히 아름답고 따뜻한 그의 시들에 대해 우리가 어떤 우려를 보태야 한다면, 가령 「자작나무의 입장을 옹호하는 노래」와 같이 「자연―인간」 「도시―농촌」의 대립에 근거한 평면적 시적 인식과, 「것이다」의 의미로 드러나는 해탈의 어법이, 그의 시를 갈등과 모순이 없는 공간에 너무 오래 머무르게 하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할 수 있다.<문학평론가·서울예전 교수>문학평론가·서울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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