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야 3당의 대통령후보는 확정되었고 지난 몇달간의 인물중심의 선택과정을 끝내고 정책대결로 옮겨갈 단계에 들어섰다. 외교정책이 한 나라의 대통령선거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원인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다만 미국의 경우 전쟁외교가 대통령의 당선을 도운 예는 더러 있다. 50년대 한국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한 아이젠하워나 70년대에 베트남전을 끝내기 위한 「평화전략」으로 재선에 성공한 닉슨이 그 예일 것이다.한국의 제15대 대통령은 그의 임기중에 어떠한 형태로든 한반도의 「통일」을 내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에서는 여러문제 가운데 남북한 문제가 가장 중요한 외교과제일 수 밖에 없다.
남북한 관계가 과연 순수한 국가간의 외교관계이냐 아니면 같은 민족간의 특수문제냐 하는데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 분단의 국제성 때문에 남북한 관계는 부득이 외교의 영역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김영삼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한 관계가 경직된 것은 사실이다. 북한의 핵의혹이 미국이 내세우는 「국제안보」의 규제대상이 되었고 미국의 직접적인 대북한 접촉과정에서 남한은 소외되었다. 북한에 의한 휴전협정의 무력화 움직임이나 무력시위는 남북한 관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동시에 북한이 식량난을 포함한 여러가지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자칫 곧 붕괴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전제가 대북정책에 혼선을 가져왔다.
이러한 남한의 대북정책은 북한정권이 지속될 것이라 내다본 미국과의 관계를 긴장시켰다. 우리는 이러한 복합적인 관계속에서 오직 북미간의 제네바 합의에 따른 40여억달러에 달하는 부담만 늘었을 뿐이다. 비록 김영삼정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나 우리의 군비증강을 위해서 강력한 북한의 군사력이 선전되었고 그에 따른 한국국민의 대북인식은 안보딜레마를 재생산하였다. 우리의 선거과정은 북한의 도발적인 행위에 의해 영향받았다. 그때마다 한국정치는 보수적 성향으로 위축되었고 여당의 장기집권을 도와주었다.
또한 한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미국의 관심도 컸다. 과거 냉전시기의 한미관계는 군사동맹의 중요성을 절대시하는 군사적 논리가 지배하였고 그에 따라 미국은 권위주의 정권마저도 지원하였다.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미국의 세계전략은 무차별적인 시장개방과 자유교역을 부과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국제화다 세계화다 하는 정책지향은 모든 나라에 경제적인 혼미상태를 초래했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제15대 대통령이 떠맡은 과제는 산적해 있다. 그 중에도 남북한의 평화정착과 한미관계의 개선이 모든 문제의 매듭을 푸는 길이 될 것이다. 평화우선주의와 통일지상주의에 얽힌 남북관계는 통일이라는 절대명제에 충실한 방법론의 개발이 필요한 것이다. 반세기 넘게 지속된 남북한의 체제경쟁을 하루아침에 정리하고 정치·경제의 제도적인 통일을 기대하는 것이 지나친 이상론이란 것은 상식에 속한다. 따라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평화공존제도의 정착이 결코 반통일적이 아니라는데 남북한은 합의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통일을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고 한 한 북한학자의 표현에는 동감한다. 우리 속담에 「등에 업은 애기 찾아 산중 헤맨다」는 말이 있다. 남북한은 통일이라는 애기를 등에 업은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이 평화롭게 살다보면 어느날 갑자기 우리는 등에 업고 다니던 통일이라는 애기를 찾게될 것이다. 그 동안에는 서로 살아남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능력을 국제사회에 과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일단 제15대 대통령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것이 1차적인 과제이다. 양국관계는 민주적인 공정한 선거과정을 통해 정통성을 확보함으로써 새로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시장개방의 당위성을 인정하나 미국의 압력에 의해서 좌우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오직 정통성 있는 참된 민주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져야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선택의 문제이다. 우리는 결코 북한인민이나 미국시민의 선호에 따라 우리의 대통령이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여·야 정당내의 후보경선이 자유로웠듯이 북한이나 미국의 영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마음 무거운 4자회담을 내다보는 오늘, 우리는 더욱 강력한 외교대통령을 필요로 하게 된다.<국제정치학>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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