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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적인 휴가/성석제 소설가(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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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적인 휴가/성석제 소설가(1000자 춘추)

입력
1997.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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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대한민국의 평균인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내가 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그는 직장에서 야근도 불사하며 부지런히 일한다. 약속은 점심 때로 맞추고 술자리는 피한다. 목요일 저녁은 모임 겸 술자리를 갖고 금요일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든가 대화를 하려고 노력한다. 토요일에는 운동을 한다. 일요일엔 미뤄뒀던 책도 읽고 영화나 연극도 한 편 보려고 한다.그런데 쉬는 날이 어떻게 가버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소파에서 졸다가 멍청히 하루해가 가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차라리 혼자 아무 생각이나 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에게는 휴가가 필요하다. 그는 대한민국의 평균인답게 부지런히 휴가지 정보를 모은다. 한달 전에 미리 콘도를 예약한다. 신문도 살피고 친구들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지도도 들여다 본다. 맛있는 식당에 관한 기사가 있으면 메모를 해두고 좀 돌더라도 그쪽으로 코스를 잡는다. 차량점검, 피서물품 준비도 꼼꼼히 하고 기상예보까지 챙긴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 그는 가족과 함께 휴가지로 향한다. 메모해둔 식당에 가지만 다른 평균인들이 먼저 와 있는 까닭에 한참을 줄서 있어도 자리가 나지 않는다. 결국 자신과 같은 처지의 평균인과 함께 옆에 있는 지저분한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평균적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는 길, 차는 밀리고 날은 덥다. 어쨌든 그는 대한의 평균인답게 초인적인 인내와 끈기를 발휘해 악착같이 목적지에 도착한다. 짐을 풀고 나니 쌓이고 쌓인 피로가 밀려온다. 하지만 방을 못잡아 안달하다 바가지를 잔뜩 쓰는 다른 비범한 한국인들을 보면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자, 그런데 그에게 문제가 생겼다. 할 일이 없다는 것. 다른 때와 똑같다.

『여기까지 와서도 술타령, 고스톱밖에 할 게 없어요? 지겨워, 정말』 곳곳에서 평균 남편, 평균 아빠를 성토하는 아우성.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는 휴가를 가는 것만 생각했지 휴가가 무엇인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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