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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정치 과연 만능인가/이정복 서울대 교수·정치학(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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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정치 과연 만능인가/이정복 서울대 교수·정치학(아침을 열며)

입력
1997.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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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치러진 3당 대통령 후보들의 TV토론에 대해 많은 비판이 일고 있다. 이번 토론은 수명의 패널리스트들이 각당 대선 후보에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과학기술 외교 안보의 여러 분야에 대한 질문을 100분동안 나열식으로 던지고 각 후보는 이에 대해 피상적으로 답변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는 정도에 그쳤다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과 답변은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대선 후보들의 TV토론과 기본적으로 같았기 때문에 전파낭비였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TV토론의 이와 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7일 시작되는 정치개혁 특위에서 고비용 정치구조의 개선방안으로 후보들의 옥외 연설회를 금지하고 TV연설과 토론 중심의 선거운동법을 만들 것 같다. 후보들의 TV연설과 토론은 정부나 TV방송사가 방영료를 부담하면 후보들에게는 경제적 부담이 안되고 또 대다수의 유권자들이 편안하게 집안에서 시청할 수 있기 때문에 여야는 TV에 의존하는 선거운동으로 고비용 정치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여야의 정치인들이 옥외 연설회 등 기존의 선거운동을 폐지하고 TV중심의 선거운동법을 만든다면 그것은 바로 민주정치를 파괴하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선 첫째로 각 후보들이 TV를 통해서는 심각한 정책토론을 할 수 없다. 지난 주 TV토론에 나타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각 후보와의 분야별 집중토론이나 후보들 간의 합동토론회가 거론되고 있고 이러한 방식의 TV토론은 여태까지의 방식보다는 나을 것이나 이러한 방식을 통한다 해도 TV토론은 피상적일 수 밖에 없다. 원래 TV는 정치를 말보다는 이미지 중심으로 만드는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말을 방송한다 해도 일반 대중의 기호를 뛰어넘는 질과 양의 말을 방송하기는 힘든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각 당의 대선후보들은 정책 자체에 대해 깊게 생각하기 보다는 TV미디어의 성격에 맞는 말을 찾아내는데 골몰할 수 밖에 없다. TV는 정치를 정책대결 보다는 이미지 대결로 전환시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둘째로 유권자들은 대선 후보들의 TV연설이나 토론만을 통해서는 후보들을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갖기 어렵다. 후보들은 미리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른 연설과 토론을 하는 것이고 우리는 이것만을 통해서는 그들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것이다. TV에 나타난 후보의 성격은 그의 실제 성격과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후보를 직접 만나서 연설도 듣고 얘기도 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한 것이다. 2,000만 유권자들이 모두 이러한 기회를 갖기가 어렵다고 해도 그 10의 1이나 100분의 1의 유권자들이라도 그러한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민주정치는 가능한 많은 수의 국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정치이지, 가능한 한 많은 수의 국민들이 이를 TV시청으로 대체하는 정치가 아닌 것이다.

셋째로 TV중심의 선거운동은 정당정치를 퇴화시킬 것이다. 선거운동 조직으로서의 정당의 효용성이 TV 때문에 감퇴한다면 정당은 퇴화할 것이고 정당의 퇴화는 민주정치를 인물중심의 무책임정치로 전락시킬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존의 정당중심의 선거운동과 옥외집회가 과거 고비용 정치의 주범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당중심의 정치와 옥외집회 같은 것은 그것이 없이는 민주정치가 불가능한 활동이다. 후보나 정당의 옥외연설을 금지하고 있는 민주국가는 없다. 옥외집회를 통한 선거운동을 허용하면서도 그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옥외 집회 때문에 선거비용이 많이 든다는 얘기를 구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들어본 일이 없다. TV연설이나 토론은 이와 같은 전통적인 선거운동방식을 보완하는 수단으로서는 장려해야 할 것이나 이를 전적으로 대체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언론은 앞으로의 대통령 선거를 여야 정당간의 정책대결로 이끌어 한국정치를 선진화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TV도 이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는데 공헌해야 할 것이나 TV미디어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구미에서는 신문이 정치에 대한 심층 보도와 토론으로 정치의 질을 높이는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TV는 신속성 면에서는 신문을 앞서지만 심층 보도와 분석에서는 신문에 크게 뒤진다. 그러나 한국의 신문은 현재 TV신문화하고 있고 그 때문에 신문이 수행해야만 할 정치적 역할을 잘 못하고 있다. 한국의 TV는 신문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여야 정치인들은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정치개혁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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