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의 시대에서 황금시대로 다시 세기말의 위기시대로/그러면 20세기의 참모습은 무엇일까『나는 20세기가 인류사에서 가장 폭력적인 세기였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영국작가 윌리엄 골딩). 『우리의 세기는 정의와 평등이라는 이상의 승리가 언제나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자유를 어떻게든 유지한다면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전혀 절망할 필요가 없다』(이탈리아역사가 레오 발리아니).
20세기의 참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20세기 역사(원제 Age of Extremes:The Short Twentieth Century, 1914∼1991)」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깊고도 넓게 통찰한다. 물론 그것은 아직 해답은 아니다. 20세기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얼마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어느 누구도 20세기의 역사를 다른 시대의 역사처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도 자신의 생애에 대해, 간접적·재간접적으로 밖에는 알 수 없게 된 시기에 대해서 쓰듯이 쓸 수는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렇다』고 말한다.
홉스봄은 20세기를 이렇게 스케치한다. 『1914년(1차 세계대전 발발)부터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까지의 「파국의 시대」 다음에는, 다른 어떤 짧은 시기보다도 더 깊게 인간사회를 변화시킨, 25∼30년간의 엄청난 경제성장과 사회적 변화가 잇따랐다. 20세기 마지막 부분은 해체, 불확실성, 위기의 새로운 시대였다.
1990년대의 시점에서 보면 20세기는 위기시대에서 짧은 황금시대를 거쳐 또 다른 위기시대로, 불확실하지만 반드시 묵시록적이지는 않은 미래로 나아갔다』(19쪽). 그는 이 황금시대가 낳은 엄청난 경제·사회·문화적 변동에 비하면 20세기의 상당부분을 채색했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냉전)은 『역사적 중요성이 덜한, 긴 안목으로 보면 16∼17세기 종교전쟁이나 십자군에 비견되는 것으로 보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홉스봄은 20세기 대부분을 동시대인으로서 체험한 역사가다. 1917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계 영국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베를린으로 이주했고 히틀러가 집권하자 다시 런던으로 이주했다. 82년까지 런던대 사회경제사 교수였고 2년 뒤 미국으로 건너가 「신사회연구원」 교수로 재직했다.
인류사적 의미까지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박학다식한 안내자를 따라 2차대전에서 중국 공산화, 폴란드 자유노조로 20세기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즐거운 지적 탐험이다. 서울대 강사였던 이용우씨가 옮기고 까치에서 상·하 2권으로 발행했다. 각권 1만2,000원.<이광일 기자>이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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