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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하는 문화재/박물관이 잠자고 있다

입력
1997.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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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온·항습시설도 없이 문화재가 훼손돼가는 대학 박물관/보관능력 포화로 유물을 창고에 쌓아둔 8개 국립박물관/허술한 보존시설과 전문가도,예산도 가물에 콩나듯한 97문화유산의 해/유물보존의 어두운 현주소…서울 모대학 박물관. 취재팀이 전시장에 들어서자 마자 후텁지근한 공기가 피부에 와 닿았다. 전시장에 걸려 있는 온도계는 32.5도를 가리켰다. 전시물 3∼4점을 들여다 보기도 전에 등에 땀이 맺혔다.

당연히 있어야 할 항온시설은 없었다. 항습시설도 100여평 전시장에 제습기 한대가 고작이었다. 화재 및 도난방지 시설도 물론 없었다. 문화재보존 전시장이 아니라 문화재 방치·훼손장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제습기와 환기장치가 전부인 80여평의 수장고는 더욱 열악했다. 이 박물관에는 청동기처럼 부식되기 쉬운 금속 유물 등 모두 2,500여점의 문화유산이 그렇게 마구 방치되어 있었다.

학예연구원 A씨. 『대학 당국에 예산을 늘려달라고 해 보지만 박물관 예산은 어느 학교를 막론하고 늘 맨나중입니다. 시설을 정비하거나 기기를 설치할 예산은 상상할 수도 없어요. 유물훼손이 감지돼도 심한 경우가 아니면 그냥 넘어갈 수 밖에요』

그나마 이 대학 박물관은 학예연구원 2명이 정기점검이라도 하고 있어 나은 편이다. 아예 학예연구원 한명도 두지 않은 박물관도 많다.

다른 한 사립대학도 상황은 비슷했다. 400여평 전시장과 150여평 수장고에 9만여점의 유물을 전시 보관하고 있는 매머드급 박물관이지만 보존처리시설은 커녕 항온·항습시설마저 없었다. 연구원 3명이 하루에 유물 300점을 점검해도 꼬박 1년이 걸린다. 그런데도 인원보충이나 예산지원은 아주 미미하다. 인건비를 빼고 유물관리비와 구입비 각 2,000만원이 전부이다.

연구원 B씨는 『9만여점의 유물을 매달 160만원으로 보존하고 있다. 공기정화시설은 커녕 냉방기도 갖추기 어렵다』고 푸념했다.

정부로부터 연간 1,000만원의 보조금을 받는 서울대 박물관의 예산은 1억원. 규모나 시설면에서 국내 대학 「최고수준」이지만 실상은 수준 이하다. 24시간 항온·항습설비가 가동돼야 하는 전시실의 냉방기 가동시간은 하루 5∼6시간에 불과하다. 현장 관계자들은 200여평 수장고도 설계 부실로 유물 관리에 애로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최몽룡 서울대 박물관장(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의 현실 진단. 『관장에 취임한 이래 박물관 건물의 비 새는 구멍을 메우다 보니 2년이 지나갔다. 건물부터 부실한데 유물보존능력을 구비할 여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부설 박물관만 18개인 미국 하버드대학은 박물관 1개소 예산이 국립중앙박물관보다 많고 그림 한점 복원 비용이 웬만한 우리 대학 박물관 예산과 맞먹을 정도다』

전문대를 포함, 전국 90여개 대학박물관중 유물 보존처리시설을 갖춘 곳은 3∼4개에 불과하다. 유물이 훼손되고 나서야 문화재연구소 등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지만 그나마 훼손 여부를 점검할 여력과 의욕도 부족하다.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사 결과 24개 대학박물관 중 23곳이 「시설불량 및 인원부족」으로 낙제점을 받았고 지난 10년동안 보존처리한 유물 1,487점중 11% 가량인 164점의 금속류가 심하게 훼손돼 재보존처리가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렇듯 대학박물관의 문화재 방치가 심각한 수준이지만 일차 관리책임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측은 지원이나 정기적인 점검은 커녕 밀려드는 유물처리 수요에도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형편이다. 새로 등록되는 출토문화재 중 손상이 매우 심하거나 부식이 쉬워 세심한 보존 처리가 필요한 유물만 추려도 1년에 400∼500여점에 달하는데 국립중앙박물관 보존처리실의 고정인력은 고작 4명에 불과하다.

엄청난 돈이 드는 문화재 관리에 배정되는 예산도 형편없는 수준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경주국립박물관 등 전국 8개 국립박물관에 배정된 97년도 예산은 500억원. 절반 이상이 제주 김해 등 국립박물관 건립비용과 늘어나는 유물로 몸살을 앓는 수장고 증설비 등 건축비로 지출된다. 유물구입비 50억원, 전시장유지비, 학술발굴비 등을 빼고 나면 예산이 거의 바닥나 보존처리나 다른 박물관 지원에 돈을 쓸 여유가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국립박물관들의 수장고도 거의 포화상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현재 수장고가 거의 꽉 차 매년 발굴·기증 등으로 늘어나는 5,000여점의 문화재를 수용할 묘안이 없다. 지방은 사정이 더욱 딱하다.

최근에는 경주 황룡사터 발굴유물 등 문화재 7만여점이 수장고 부족으로 10년 이상 허술한 창고에서 방치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한 고고학자는 이렇게 목청을 높였다. 『유물은 출토되는 순간부터 시한부 삶을 산다. 온전하게 보존할 수 없다면 발굴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낫다. 중앙박물관도 유물 구입에 들일 돈이 있으면 수장고에서 썩어가는 문화재를 제대로 보존하는 데 여력을 쏟아야 한다. 문화재 관리에 관한 한 「보존」이 「전시」보다 우선순위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당국이 한심하다』

문화재 당국도 유물 관리의 부실을 전적으로 부인하지는 못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정태환 사무국장은 『문화재 보존처리에 들이는 돈이 충분하지는 않다』며 『부족한 예산으로 박물관을 운영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문화재관리국의 한 공무원은 『문체부에서는 예산을 따오는 것은 사실상 「투쟁」이다』라며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은 멀었다』고 털어 놓았다.

조상의 얼과 지혜가 담겨져있는 우리 문화재는 개발의 삽질에 깨지거나 아니면 박물관에서 썩어 나가고 있다. 오늘도 나부끼는 「문화유산의 해」라는 현수막이 부끄러울 뿐이다.<염영남 김경화 기자>

◎연 7,000건 유물중 일부만 보존처리/공사중 문화재 발견해도 공기연장 부담 모른척 예사

유물 발굴은 지역개발 공사현장에서 발견되는 유물을 발굴하는 구제발굴과 학술정보에 따라 실시되는 학술발굴로 나뉘어진다. 93년까지만 해도 연간 총 발굴건수는 90여건으로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구제발굴의 급증으로 총유물발굴건수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모두 192건중 구제발굴이 137건으로 약 70%를 차지했으며 올해는 200건을 넘어설 전망이다.

도로나 철도공사, 대형공단 조성 등 대규모 건설공사에서는 착공 직전 문화재 매장여부를 조사하는 문화재 조사가 이뤄진다. 환경영향평가법에 의해 대상 지역안에 문화재 매장 사실이 확인되면 발굴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지표조사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공사중 유물이 발견되면 공사주체는 당국에 신고한 뒤 공사를 중단시키고 바로 발굴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공사주체와 문체부간의 사전협의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공사설계가 끝난 뒤에 조사되는 경우가 많아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문체부 고수길 유형문화재과장은 현실을 이렇게 진단했다. 『건축업자에게 문화재법은 악법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다. 문화재 발굴로 공기가 연장되면 비용이 막대한데다 발굴비용도 공사주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유물이 발견돼도 모른척하고 밀어 붙이는 일이 다반사이다. 국가 주관의 대규모 공사는 사전조사나 공사중 발굴신고가 어느 정도 지켜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발굴작업은 공사주체로부터 용역의뢰를 받은 대학박물관급 이상의 기관이 맡는다. 기간이나 인력, 비용은 유적과 유물 건수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대개 책임자를 포함한 30여명의 발굴팀이 20∼30일 정도에 발굴을 마치게 되며 비용은 3,000만∼5,000만원선이다.

발굴현장에서 나오는 유물은 온전한 것이 거의 없다. 깨지거나 부서진 유물을 복원하는 보존처리작업은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연구소의 몫이다. 보존처리 외에 연대 측정, 물리분석 등을 한 뒤 박물관으로 보내지만 50명 안팎의 적은 인원이 전체 발굴유물을 떠맡기에는 역부족이다. 한 해 보존처리를 요구하는 7,000여건의 문화재 가운데 일부만 가치를 따져 처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은 부식되거나 손상될 우려가 있을 경우 연구소로 옮겨 응급처치를 하게 되며 소유자인 국립박물관의 반환요구가 있을 때까지 대학 박물관에서 임대형식으로 전시하게 된다.

이융조 충북대 교수는 우리나라 문화재 관리에 대해 『발굴에서 전시까지 어느 한 부분도 소홀히 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공사장에서의 발굴을 늘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4년간 4,221만평에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262개의 유적이 조사돼 16만평당 1개소의 유적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에서 개발된 4억3,400만평의 토지내에 2,700여개소의 문화재 매장 지역이 있었다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는데 그 기간에 구제발굴이 이뤄진 건수는 319건에 불과했다』 사후관리체계에 문제가 있다하지만 그래도 일단 발굴하는 것이 파괴되도록 놔두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염영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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