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사죄·배상요구 꾸준한 활동 “각성제”훈 할머니가 50여년을 그리던 고국 땅을 밟았다.
4일 귀국후 첫 인터뷰에서 스스로 호소했듯 할머니의 고국 방문은 잃어버린 가족과 고향을 찾기 위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방한 의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귀국은 그로 하여금 가족과 반세기가 넘게 생이별토록 만들었던 원인, 바로 일본군 군대위안부 문제를 전국민적인 관심사로 부각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
사실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일회성의 관심과 동정에 그친 감이 없지 않다. 이 문제가 여론화한 것은 여성단체들이 나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연구회를 조직한 90년부터다. 이듬해 김학순 할머니를 시발로 여러 생존 피해자의 용기있는 증언이 잇따랐고, 이를 토대로 실증적 연구와 일본의 사죄·배상을 받아내기 위한 국제연대 등 다각도의 활동이 전개됐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우리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국민의 무관심속에 아직도 피해 당사자들과 관련단체들의 몫으로 남겨져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은 일본 정부가 국제적 비난속에서도 여전히 사죄와 배상을 외면할 수 있는 빌미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올 1월 불거진 「민간기금」 파문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실상 일본 정부의 주도로 결성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은 피해자들을 몰래 접촉, 마치 시혜나 베풀듯 1인당 500만엔의 「위로금」을 전달,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았다. 이에 대한 반발로 시민단체들이 벌인 피해자 생활지원을 위한 모금운동 결과는 우리를 더욱 참담하게 만들었다. 액수에 있어 일본의 민간기금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호응이 적었던 것도 문제지만, 그나마도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으로 승화하지 못한채 이내 식어버린 것이 더욱 큰 문제다.
특정사안이 생길 때만 잠시 들끓었다가 언제 그랬냐는듯 잊고마는 식으로는 위안부 문제 해결의 궁극적 목표인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결코 받아낼 수 없다. 훈 할머니의 문제를 인도적 차원의 혈육찾기로만 생각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관심이 캄보디아라는 먼 이국땅에서 홀로 살아남은 훈 할머니 한 사람에게만 국한돼서도 안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부가 1일 훈 할머니처럼 동남아 일대에 생존해 있을지 모르는 위안부 피해자 실태조사를 위해 신고센터를 설치토록 해외공관에 훈령을 내린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훈 할머니의 귀국은 위안부 진상규명과 배상요구 운동, 생존 피해자 지원 활동 등의 한차원 높은 발전을 위한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이희정 기자>이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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