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 경선대회가 끝난 이후 신한국당이 심상치 않다. 경선에 참여했던 후보자들이 이회창 당선자에 대해 협력하기보다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지난 7월21일 우리는 장장 10시간 35분에 걸친 신한국당 전당대회 장면을 생중계 방송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패자와 승자 모두가 전당대회의 결과에 승복하는 의미에서 손을 잡고 전당대회장 단상에 나섰을 때 신한국당 1만2,000여 대의원들이 보여주었던 그 환호와 열광의 소리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경선과정에서 후보들은 설령 패배한다해도 당에 남아 당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어느 후보는 경선 전당대회가 끝난 바로 다음날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앞으로 도정에 온 힘을 쏟고 연말 대선에서 신한국당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패배한 신한국당 대선 후보자들의 행보가 우리 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인제 경기도지사의 경우, 지난 주 『이회창 당선자는 3김과 다를 바 없다. 이 경우 어떤 중대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역사의식이 있는 나로서는 3김과 똑같은 정치 지도자의 출현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한동 후보의 경우 선거대책위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고 있다. 또 이수성 후보는 본인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언행의 진의가 어디에 있든간에, 경선이 끝나자마자 두 야당 총재를 집으로 방문하고 미국을 방문해서는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선 호남출신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을 새삼스럽게 거론했다고 한다. 결국 경선에서의 패배를 승복할 수 없고 나는 내 갈길을 가겠다는 것으로 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결론부터 말해 나는 이런 일은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신한국당 경선이 한창일 때 한 언론매체를 빌어 깨질 당은 빨리 깨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정책과 노선이 다른 사람들이 무조건 권력을 잡겠다는 생각 하나로 동거해온 신한국당은 빨리 깨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당의 총재가 금융실명제를 주장할 때 당의 일부세력들은 대통령의 개혁정책에 딴죽을 거는 당, 오로지 권력을 잡아야겠다는 욕심 하나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던 사람들과 그 법을 만들고 강력한 시행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한 지붕 한 식구가 되어버린 당, 그런 당은 이제 그만 깨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적 신념이나 정책, 노선이 아니라 무조건 권력만 잡고 보자고 뭉치는 정치행위는 나라를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나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신한국당 경선에서 패배한 대선 후보자들이 뒤늦게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노선을 앞세워 『이제라도 당을 깨서 내 갈길을 가겠다』고 한다면 나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경선에 참여하지도 말았어야 했기 때문이다. 경선에 참여했던 후보자들은 경선 결과에 승복하기로 약속하고 전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승자의 손을 들어주었고 국민앞에서 단합과 결속의 포옹까지 했었다. 그것은 경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겠다던 애초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겠노라고 국민앞에서 다시한번 약속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국민앞에서의 공개적인 약속조차 하루도 지나지 않아 뒤집어 진다면 우리가 조만간 보게될 우리의 사회 모습은 어떤 것이겠는가.
그것은 우리 모두가 너무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회, 모든 약속은 유리하면 지키고 불리하면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는 사회, 그래서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사회, 이런 사회가 아닐까.
신한국당 경선에서 패배한 후보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고 우리 사회의 기준이 되어야 할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분들이 하는 말, 그런 분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 세대는 사회를 배우게 될 것이고 국민은 사회생활의 가치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나는 이 일이야말로 경선 후보자들이 대통령이 돼서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그 어떤 일보다도 더욱더 값지고 귀중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신뢰라는 가치는 한 사회의 가장 중요한 토대이며 그것은 정치노선 이전의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불리함과 억울함이 있다해도 승자에게 승복하기로 했던 원래의 그 약속을 지키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개혁을 통해 만들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국민통합추진회의 상임집행의원>국민통합추진회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