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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석·장애인주차장 있으나마나(이런 법이 어디 있나)

입력
1997.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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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앉거나 차 대면 “임자”/“나 편하면 그만” 이기주의 팽배/“노약자 우선” 양보의 미덕 실종/선진국선 무거운 벌금… 강제성 이전 모두 자성을경로석은 「경우에 따라 노인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인가.

28일 상오 11시30분께 서울지하철 3호선 고속터미널―양재역의 전동차 안. 불편한 무릎을 감싸고 간신히 역계단을 내려온 김모(73·서울 강남구 수서동)씨가 전동차에 올라 경로석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경로석은 이미 학생 2명과 30대 남자가 버젓이 차지하고 있었다. 같은 전동차안의 다른 2곳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경로석이 아닌 일반 좌석에 앉아 있는 노인이 2명이나 됐다. 차는 만원이었다.

김노인을 힐끗 쳐다 본 경로석의 학생들과 젊은이들은 애써 딴청을 부렸다. 김노인은 『젊은 사람들이 경로석에 앉아서 일어나지도 않느냐』고 꾸짖었다. 30대가 마지못해 일어나며 『노인이면 자리를 요구할 권리라도 있느냐』고 내뱉었다. 반말조에 발끈한 김노인이 『경로석도 모르느냐』고 따졌으나 30대는 『양보했으면 고맙다고나 하시라』고 되받은 뒤 다른 칸으로 가버렸다.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한 김노인은 말을 잃고 말았다.

이같은 상황은 시내버스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노인들은 흔들리는 버스에서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해 안절부절 못한다. 보다 못한 운전사가 경로석을 노인에게 양보토록 종용하기도 한다.

경로석은 법에 규정된 것은 아니다. 노인을 섬기는 미풍양속을 살리고 노인들의 불편을 덜어주자는 사회적 약속이다.

대한노인복지후원회 신상림(52) 사무총장은 『풍요로운 오늘을 있게한 노인들이 경로석을 차지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경로석은 노인만 앉을 수 있다는 의식교육과 함께 선진국처럼 위반시 많은 벌금을 물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노인회 김동술(51) 사업국장도 『노령화사회를 맞아 역 대합실 등 다중이 모이는 장소에도 경로석을 설치해야 하는데도 학교 가정에서의 교육이 입시위주여서 양보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미풍양속이 후퇴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장애인 전용주차장 운영도 경로석과 다를 것이 없다. 현행 주차관리법은 주차장 수용능력 10∼1백대는 1대, 1백대 초과는 1%의 장애인 전용주차 구역을 설정토록 했으나 권장사항이어서 지켜지는 곳은 찾기 힘들다.

「장애인 편의시설 촉진 시민모임」이 최근 서울시내 주차장을 조사한 결과 종로서적 영풍문고 등 대형서점, 명동의 각 은행 본점 등 대규모 시민이용시설 대부분에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이 없었다. 경복궁과 덕수궁외곽 같은 공공시설에도 마련되지 않았다. 설치는 돼 있으나 장애여부와 관계없이 차를 먼저 주차하는 운전자가 임자인 경우가 태반이다. 선진국에서는 이 경우 어떤 교통법규 위반자보다도 가장 무거운 벌금을 물린다.

정부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을 4월에 공포하고 내년 초까지 시행령을 마련, 4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이 법은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을 설치하지 않거나 정상인이 장애인칸에 주차할 경우 20만원이하의 과태료를 물릴 계획이다.<박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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