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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마치고 떠나는 강영훈 적십자사총재(한국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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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마치고 떠나는 강영훈 적십자사총재(한국인터뷰)

입력
1997.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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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 사업에 ‘정치’는 없다/속는한이 있어도 북한 도와야 국민 뒷받침에 대화재개 성과/말많은 적십자회비 강제징수 올해부터 자율납부 시험도입강영훈 대한적십자사총재가 31일로 6년간의 임기(강총재는 3년 임기 총재직을 연임했다)를 마치고 8월1일 세종재단 이사장으로 부임한다. 강총재의 재임기간은 강릉 북한잠수함 침투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시기였다. 강총재는 그러나 최근 대북식량지원과 관련, 남북적십자회담이 재개된데 대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계기로 남북간 이산가족문제를 다룰 대화의 장이 마련됐으면 하는 강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서울 중구 남산동 3가 대한적십자사 5층 총재실에서 강총재를 만났다.

□대담:정병진 사회부 차장

―총재의 재임기간은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시기여서 여러가지로 아쉬움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동안의 소회를 말씀해주십시요. 특히 한동안 중단됐던 남북 적십자회담이 다시 열려 소감이 남다를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남북적십자회담은 92년 2월 정원식 총리가 북한의 연형묵 총리와 「남북간 화해와 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에 서명·교환한 후 북한측이 전제조건을 들고나오는 바람에 진전을 보지못했습니다. 당시 북한이 「아무 전제조건없이 만나 이산가족문제를 논의하자」고 해 판문점에서 8차례 실무자간 접촉을 가졌지요. 그런데 북한측이 이인모씨 송환, 북한내 핵문제 거론불가, 한미군사합동훈련 중단 등 3가지 전제조건을 들고 나와 결국 회담이 결렬됐습니다. 정치적인 문제는 정부당국에 맡기고 우리는 이산가족문제를 다루자고 설득했지만 그쪽에서 거부했습니다. 그 후 기회있을 때마다 함께 만나 이산가족문제를 얘기하자고 했으나 반응이 없다가 최근 식량지원을 계기로 대화의 물꼬가 트이게 됐습니다』

―베이징(북경)에서 남북적십자회담이 재개되기까지의 과정에도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입니다.

『사실 95년 북한에 수재가 난 직후 우리는 국제적십자사연맹을 통해 인도주의차원에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직접적인 식량지원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번 만나서 얘기하자고 북한적십자사에 제의했지만 일절 반응이 없었습니다. 지난해 9월 강릉잠수함 침투사건이 터지면서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이 식량부족으로 굶어죽고 어린아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렸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인도주의적 욕구는 높아져 갔습니다. 우리가 거듭 대화를 제의한 것은 두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국제적십자사연맹은 수해가 극심한 황해도 신의주지역 등 2만8,000세대 13만명에게 제한적인 지원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국내의 종교·사회단체는 함경도 등 수해가 덜한 지역에도 식량지원을 해야한다는 의견을 개진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지원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수송로를 다변화해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4월18일자로 판문점에서 한번 만나 의논하자고 북적측에 제의했는데 북한측에서 베이징에서 보자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과거 남북회담과정을 지켜보면 회의절차와 같은 사소한 문제로 대화가 결렬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경우에는 상당히 대승적인 접근을 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비록 판문점 루트가 북적에 의해 거부되긴 했지만 인도주의 사업이니까 세세한 방법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동포애로 적극 돕겠다는 국민들의 인식이 뒷받침됐습니다. 국민들의 동포애에 크게 감동됐었습니다. 물론 북한측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해서 언제까지나 의심만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속는 한이 있더라도 해보는데 까지는 하는 것이 인도주의적 관점 아니겠습니까. 그러다가 잘되면 더욱 좋은 일이고요. 아무튼 식량지원을 계기로 재개된 대화가 남북관계개선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번에 북적쪽에 이산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해주자고 제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적도 이에대해 종전보다 한층 누그러진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산가족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겠습니까.

『이산가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현재로서 없는 게 무엇보다 안타깝습니다. 전체 분위기가 달라져야 하는데…. 결국 남북관계의 전반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같은 인도주의라도 우리는 「정치적 고리」가 없는 반면 북한은 체제상 그럴 수 없습니다. 북한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전반적인 분위기를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적십자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도주의 정신아래 대북구호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남북대치라는 우리의 현실 때문에 한적이 민간과 정부사이서 어정쩡한 입장을 보여왔다는 일부의 지적이 있습니다.

『과거 한적이 정부의 시녀노릇을 해왔다는 인상을 주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부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일이 없었습니다. 정부도 한적의 입장을 존중해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동남아 등 다른나라로부터 구호요청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한적도 이같은 위상에 걸맞는 해외활동에 신경을 써야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전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170개 국가의 적십자사 중 우리가 국제연맹에 내는 기여금이 13,14번째입니다. 아시아지역에서는 일본 다음입니다. 과거 우리가 도움을 받은 만큼 지금 우리가 남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기여금만 내는 것이 아니고 국제적십자사활동에서 우리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지역국가의 적십자사간 협력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일본 중국 베트남 몽골 등과의 교류가 활발합니다』

―지난 시절 적십자회비의 강제징수를 둘러싸고 말이 많았습니다. 올해부터 자율납부제를 도입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적십자의 자원봉사정신과도 궤를 같이 한다고 봅니다.

『일부에서 적십자회비의 준조세적 성격에 대해 말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올해부터 주민들이 자율납부하는 방식을 일부 지역에서 시험적으로 도입할 예정입니다. 자율납부는 (국민들의) 공동체에 대한 의무·책임감과 병행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마다 권리만 주장하는 분위기에서는 자율납부가 제대로 정착되기 어렵겠지요. 성과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적십자활동은 인도주의 정신과 자원봉사정신이 바탕입니다. 봉사정신은 나 혼자만 살겠다는 게 아니고 다함께 잘 살자는 것이지요. 봉사정신은 남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합니다. 물질만능과 배금주의, 엷어지는 안보의식 등 소위 「한국병」은 남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봉사정신은 한국병을 치유하고 민주공동체사회를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헌혈사업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는지요. 헌혈증서가 일부 병원에서 박대당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81년부터 매혈을 금지하고 한적이 헌혈사업을 전담해왔습니다. 91년 총재에 취임했을 때 연간 헌혈자수가 120만명이었는데 지난해에는 220만명으로 늘었습니다. 수혈에는 충분한 양이지만 제약분야에서 새로운 수요가 늘어나 연간 300만명 정도가 헌혈을 해야 자급자족이 가능합니다. 헌혈은 자기생명의 일부를 남에게 주는 것이니까 봉사정신중 가장 고귀한 것입니다. 헌혈증서를 홀대하는 병원이 있다면 병원도 헌혈자들의 봉사정신을 배워야지요』

―새로 부임하는 세종재단 이사장으로서 포부가 있다면 이 기회에 말씀해주십시요.

『세종재단의 세종연구소는 외교 안보 경제분야에서 많은 연구를 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원이 된 심정으로 임하겠습니다』<정리=김상우 기자>

□약력

▲1922년 평북 창성 출생

▲43년 만주 건국대 경제학과 수료

▲60년 육군사관학교 교장

▲66년∼72년 미국 남가주대 국제정치학 석사·박사

▲77년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장

▲78년 외교안보연구원장

▲80년 주영 대사

▲84년 주로마 교황청대사

▲88년 13대 국회의원·국무총리

▲91년 대한적십자사 총재

▲서훈: 9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외 다수

▲저서: 「한국통일문제」 「한 외교관의 영국 이야기」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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