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화당의 제시 헬름스 상원의원은 평생 의회활동을 해오면서 자기 이름을 붙인 법을 남기는게 소원이었다. 강경 보수주의자로서의 이미지를 다져온 그는 몇차례 「헬름스 법안」을 만들었으나 상·하원을 통과, 정식으로 「헬름스법」을 탄생시키는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여러번의 도전끝에 최근에야 쿠바에 대한 경제적 제재법인 「헬름스―버튼 법」으로 소원을 이뤘다. 그나마 독자명의의 법은 되지 못하고 두사람의 이름이 함께 쓰여 반쪽의 성취인 셈이다.이곳 워싱턴 국회의사당의 의원들은 「법 제정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자신의 이름이 담긴 법으로 승부한다. 80년대 강경 무역정책을 담아 외국정부와 기업들을 놀라게 했던 「게파트법안」이나 주한 미군의 3단계 감축론을 담은 「넌―워너수정법안」, 최근 논란중인 총기휴대 규제내용의 「브래들리법안」 등이 모두 의원이름을 법안명칭으로 하고 있다. 미 경제정책의 골격인 독점금지법도 의원의 이름을 담아 셔먼법과 클레이튼법으로 불린다.
이러한 관례는 법안의 명칭이 곧바로 법안의 내용을 말해주지는 못하지만 법안을 제안한 의원으로 하여금 온몸을 던져 법안을 다듬게 만든다. 의원이 죽더라도 그의 이름이 붙은 법은 남는다. 그래서 얕은 꾀나 잘못된 시류를 쉽게 따르지 못한다. 그랬다가는 자신의 이름에 스스로 침을 뱉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문화나 여건에 차이가 있지만 한국 정치현실에서 볼 때 이러한 관행은 일부를 보완해서 취할만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의 의원들은 여의도의 의원들이 국무총리·장관을 상대로 한 대정부질문에서 심심찮게 『이러이러한 법을 만들 용의는 없는가』라고 묻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국민으로부터 법 만드는 권한을 부여받은 법제정가가 거꾸로 행정부에 법을 만들라고 부탁하는 주객전도의 장면이라니. 일반법안의 경우엔 필요 없겠지만 의원 개인이 심혈을 기울인 독자적 법안에 대해선 「홍길동 정보화산업촉진법」 「박문수 개정노동법」 등으로 의원이름을 넣어 부르면 의원의 위상을 자각케 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국회가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워싱턴>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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