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얼마전 그들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의 3년상이 끝났음을 공식으로 선언하였다. 죽은 지 꼭 3년만에 거상을 끝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전통으로는 3년상이란 만 2년간 거상하는 일이다. 사람이 죽으면 초상의 의식이 있고, 한 돌이면 소상, 두 돌이면 대상의 제사를 치르는데, 그동안 상주는 상주로서 지켜야 하는 법도와 도리에 따라야 한다. 대상이 끝나면 탈상을 하여 비로소 상주로서의 온갖 멍에를 벗는 것이 3년상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이른바 3년상은 새로운 거상 제도인 셈이다. 연호도 새로이 제정하는 판에, 거상 기간을 연장한 일에 대하여 용훼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이를 계기로 국어의 수표현을 생각하여 보고자 할 뿐이다.우선 3년상이란 올림말에 대한 남북의 국어사전에 나타난 풀이에서 수표현이 정확하지 못함을 지적하려고 한다. 사전들은 하나같이 3년 동안 거상하는 일이라 풀이하고 있다. 다 아는 단어 같지만, 올림말 3년의 풀이를 찾아보면 세 해라 되어있고, 다시 해를 찾아보면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기간으로 되어있다. 지구가 태양을 한 번 도는 기간이 대체로 달로는 열두달, 날로는 365일이니까, 전통적인 3년상은 잘못되고 북한의 3년상이 올바른 것으로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국어의 단어를 사전으로만 배우고 익히는 외국인에게나 해당하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에게는 풀이의 3년이란 만 2년으로도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국어에서 3년이란 우리의 세는 나이처럼 설이 두 번 지난 기간을 가리킨다. 때에 따라서는 만으로 세는 나이와 같이 세 돌까지의 기간을 뜻하기도 하지만, 3년상의 경우는 아니다. 국어의 수표현은 이러한 모호함이 있으므로 문맥에 따라 적절히 해석하여야 한다. 우리가 느끼지는 못하지만 거기에는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그러한 일은 공적인 상황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95년의 광복절에는 우리나라가 일제의 강점에서 해방된 지 꼭 50돌이 된다고 하여 대대적인 경축행사가 있었다. 나라에서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을 전개하면서 그 로고를 「광복 50년, 통일로 미래로」라고 한 일을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때의 광복절 경축사에는 늘 하던 대로 일제 36년이란 말이 빠지지 않았다. 요즘 흔한 말로 암울한 시기를 조금이라도 늘여서 표현하려는 충정에서 하는 말인지 모르나, 광복 50년과는 아귀가 맞지 않는 표현이다. 일제의 강점기는 정확히 계산하면, 35년에서도 열흘 남짓 모자라는 기간인 것이다.
다시 말하기도 끔찍한 삼풍백화점의 붕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젊은이가 있었다. 무너진 건물의 구조물에 짓눌리면서 칠흑같은 시멘트 속에서 열흘 가까이 견뎌낸 젊은이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참을성이 없다고 치부되는 요즘의 신세대에게 그러한 강인한 힘이 있음을 행동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그때 국내 언론기관의 보도 내용이다. 정확히 230여 시간만에 구조되었는데도, 보도는 모두 11일만에 살아나온 기적이라고 대서특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외신은 9일 10여시간만에 구조되었다고 보도하였다. 국내의 보도는 우리의 대견한 젊은이의 생환에 언론이 지나치게 흥분한 결과가 아니다. 더욱이 오보라고 할 수도 없다. 국어의 모호한 수표현의 관습에 말미암은 보도라고 생각한다.
국어는 서구어와 같은 단수와 복수의 구별이 엄격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사실에서 수치에 둔감한 민족성을 말한 적이 있었다. 따져보면 「많은 사람」이란 표현이 「많은 사람들」보다 더 경제적이다. 「많은」으로 복수가 예견되는데, 복수의 징표로 「들」을 덧붙이는 표현은 잉여적이고 말의 낭비에 속하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계산에 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모호한 수표현은 얼마든지 지양할 능력이 있을 것이다.
정확한 일을 보면 한 치도 틀리지 않는다는 말을 쓴다. 설계도도 없이 집을 지어도 문제가 없던 시절에 생긴 말일 것이다. 한두 자 정도의 오차도 크게 문제되지 않은 때에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으니 여간 경탄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한 치가 아니라, 한 치의 몇 10, 몇 100분의 1도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될 경우가 있다. 범상한 사람들의 언행도 정확하여야 원만한 생활이 보장되는 세상이다. 거기에는 시공이나 물량의 수치를 꼼꼼히 따지고, 그 수표현이 문맥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3년상과 같이 지난 시기에 만들어진 어휘에서의 수표현은 이미 굳어진 관용으로 돌리더라도, 일상의 언어생활이나 사전의 뜻풀이와 언론보도 등에서는 모호한 수표현이 지양되어야 한다. 조금만 신경쓰면 국어의 수표현은 얼마든지 정확하게 될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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