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우리 호텔에 입사한 김씨는 호주에서 20여년을 살다가 모든 것을 청산하고 고국에서 새 출발하고자 굳게 마음 먹은 사람이다. 르네상스 시드니호텔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그는 우리 호텔에서 어렵지않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식음료부서로 배치된 그를 나는 경력과 나이 등을 고려, 고급 양식당의 헤드웨이터로 임명했다.그러나 그렇게 근무를 시작한지 얼마 안된 어느날 그를 선택한 나의 결정은 중대한 심판을 받게 됐다. 우리 호텔은 직원 작업장과 고객 영업장이 연결되는 통로입구에 반드시 이런 팻말이 붙어있다. 『이 곳을 지나면 바로 당신의 무대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대에 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첫인상을 만드는 기회는 한번 뿐입니다』 서비스에 임하기 직전의 정신무장을 위한 모토이다.
김씨는 호주에서 많은 직업을 거쳤는데 그중 하나가 단역배우였다. 그런데 무대에만 서면 지나치게 긴장돼 결국 그 일을 포기해버린 아픈 기억이 있었다. 주방문을 열고 레스토랑에 들어서려는 순간 그 아픔은 그를 또 한번 얼어붙게 했다. 샴페인 크림 소스에 구운 연어를 예쁜 접시에 담아 손님 테이블에 내놓기 직전 그는 급하게 뛰어들어오는 손님과 부딪쳐 그 음식을 레스토랑 바닥에 다 쏟고 만 것이다. 소스냄새와 연어냄새가 점점 퍼지자 김씨는 급한 나머지 청소를 담당하는 객실 관리부(전화 8554)에 연락한다는 것이 그만 8854를 눌러버렸다. 이는 객실 854호실로 연결되는 번호였다.
객실손님: 『여보세요』
김씨: 『지금 사고가 났는데 빨리 와서 좀 도와주세요』
객실손님: 『지금요? 난 자고 있는데…』
김씨: 『남들 일하는 시간에 잠을 자고 있단 말예요? 노블레스로 빨리 와요』
객실손님: 『노블레스가 어디요?』
김씨: 『아니 이 호텔에 하루 이틀 있어봤어요? 로비에 있잖아요. 빨리 와요. 빨리』
김씨는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연락을 받은 나는 급히 레스토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김씨가 연락했다던 객실관리부 직원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어리둥절한 모습의 신사 한분이 레스토랑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 신사분은 『방에서 자고 있는데 이 식당에서 급히 나를 불러서 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김씨가 나의 성난 시선에 잡혔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아니 엎질러진 연어소스가 아닌가. 나는 그 손님에게 고급 스페인 브랜디 한잔 하시겠냐고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후 나도 호흡을 가다듬고 그에게 머리숙여 사죄를 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의 실수를 용서해 주십시오』
진짜 웃기는 코미디는 무대 밖에 있는 것 같다.<르네상스서울호텔 식음료 이사·스페인인>르네상스서울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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