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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어업분규를 보고/정일영 백상재단 이사장(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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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어업분규를 보고/정일영 백상재단 이사장(특별기고)

입력
1997.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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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양질서 대응책 세워라/명백한 협정위반/일의 한국어선 나포도 EEZ시대 서곡일뿐/민관협력 장기대책 필요일본 하시모토 류타로(교본룡태랑) 총리가 「영해 침범 한국어선 나포는 합법적」이라고 언명했다는 보도를 읽으면서 문득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했다. 한일회담 대표에서 주 프랑스공사로 부임한지 1년 남짓된 63년말 외무차관에 임명돼 대통령께 인사를 드리러 청와대로 갔다. 박대통령은 집무실 책상위에 지도를 펴놓고 컴퍼스로 이리저리 재고 있었다. 제주도 일대의 해도였다. 『이것을 하나로 묶을 수 없나』, 『동경 126도에서 127도의 제주도 동서해역 이내요.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걸 직접 만지십니까』 굳어진 표정의 박대통령은 『모두들 어려워하니 어찌하나』라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16개월후인 65년 4월 도쿄(동경)에서 양국의 차균희(차균희)·아카기 무네노리(적성종덕) 농림장관이 어업협정에 가조인했다. 한달동안 마지막 논쟁이 된 것은 바로 제주도 주변, 일본어선 금지수역 획정이었다. 동경 126도에서 127도, 우리는 13분, 일본측은 7분을 고집해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우리측 주장대로 합의됐다.

기선으로부터 12해리 전관수역, 그 밖에 어선 척수와 연간 총어획고를 제한하는 공동규제수역, 다시 그 외측에 어족자원 공동조사수역 설정, 그리고 9,000만달러의 어업협력자금 공여 등이 합의됐다. 52년에 선포된 평화선이 없어진 대신 한일어업협정이 66년 5월22일 조인된 것이다.

이후 우리는 경제성장과 함께 북태평양으로부터 멀리 대서양 라스팔마스기지까지 조업을 하는 세계적인 유수 어업국으로 성장했다. 한일간 수역에서는 우리 어선들이 일본근해에서 일본어선보다 더 많은 어획고를 올리는 등 상황이 역전됐다.

일본의 전국 어업협동조합 총연합회는 연근해 어업의 쇠퇴를 막기 위해 정부와 국회에 강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 하시모토 총리의 발언도 이같은 배경에서 나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본측 주장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유엔 해양법 조문도 있지만 우선 65년 한일 어업협정위반이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어업협정 제1조에 「직선기선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타방 체약국과 협의하여 결정한다」고 약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초점은 일본의 직선기선에 의한 영해 확장이 한일어업협정상 일본의 배타적 관할권 행사수역을 확대했는지 여부이다. 한국과 명시적 합의없이 한국어선 어로금지 수역을 넓혔다면 명백한 어업협정위반이다.

영해의 일방적 확대를 선포하고 종전에 어로가 허용됐던 수역에서 우리 어선들이 나포되었다면 어업협정 4조1항, 즉 어선 소속국만이 재판관할권을 갖는 기국주의 규정의 위반이다. 따라서 일본재판소는 공판중인 선장에 대해 재판권이 없음을 선언하고 즉각 석방해야 한다. 영해법이라는 일본의 국내법은 결코 국제조약인 어업협정을 앞서지 못한다.

일본은 직선기선에 의한 영해확장을 주권적 권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수긍할 수 없는 주장이다. 국제사법재판소가 51년 직선기선 설정에 관한 영국과 노르웨이의 어업분쟁사건에서 「해역의 경계획정은 국제적 양상을 수반하는 것으로 국내법으로 표현되는 연안국의 의사에만 따르도록 할 수 없다. 구역획정은 연안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단독적 행위라할 수 있겠지만, 타국에 대한 유효성은 국제법상의 규정에 따라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일어업협정은 5년간 유효에 1년전 통고파기를 규정하고 있어 일본측이 파기할 수도 있고 개정을 요청할 수도 있다. 파기통보를 했다고 해서 양국관계가 파국으로 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유엔해양법에 규정된 200해리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은 종래의 해양질서를 전면 개조하는 것이다.

한일간의 분규는 새로운 세계해양질서형성의 과도기적 현상일 수도 있다. 얼마나 시일이 걸릴지 모르는 EEZ제도편성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한일간에는 독도영유권분쟁이 걸려있다. 65년의 어업협정은 30년간의 상황변화를 감안해 재검토가 있어야 겠지만, 어떤 형태이든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즉 잠정적인 조처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대처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은 EEZ해양질서에 대한 대비이다. 외무부와 해양수산부 등 관련부처는 어업협정과 EEZ 경계획정에 대해 면밀한 구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방대한 문제인만큼 민간부분 및 학계 전문가들로 대책연구심의회를 구성, 장기적인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한일 외무장관회의에서 대국적 견지에서 미래에 대한 고차원의 구상이 논의되길 기대한다.<전 외무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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