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사흘만에 4만7,000여대가 팔렸다. 승용차 판매사상 최고치라고 한다. 기아자동차가 긴급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실시한 할인판매의 결과다. 30%에 이르는 할인율에다 「국민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명분까지 주어지니 소비자들은 수백만원대의 승용차를 겁없이 덥썩덥썩 사들였다. 정상가에 차를 구입한 사람은 억울해서 가슴을 쳤다. 소비자는 200만∼300만원 싼 값에 차를 사고 기아는 4,000여억원의 현금을 확보했으니 참으로 「누이좋고 매부좋고」였다. 기업과 소비자가 이렇게 화기애애했던 적은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우리 소비자의 유난한 「의리」를 떠올리며 흐뭇해하기도 했다.그러나 기아의 「떨이 판매」가 꼭 좋기만 한 것일까. 혹 과소비를 조장하고 승용차시장을 혼란에 빠뜨린 측면은 없는가. 경쟁사들의 판매량이 평소에 비해 10∼20% 밖에 줄지 않았다니 기아차의 덤핑판매는 대체구매의 결과라기보다는 상당부분 불요불급한 수요를 창출한 셈이다. 중고차시장은 아예 썰렁해졌다고 한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 그래서 건전한 기업 기아를 살리자는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 덤핑판매는 뭔가 찜찜하다.
또한 싼 것이라면 무조건 사들이고 보는 비이성적 소비행태를 확인한 것 같아 씁쓸하다. 백화점 세일때면 그 일대 도로를 마비시키고, 해외에까지 싹쓸이 쇼핑으로 소문난 우리의 소비자들. 사경에 빠진 건전기업을 살리자는 명분까지 주어지니 신명이 났다. 차량 1,000만대 시대를 맞아 승용차운행을 줄이자고 소리 높여 외쳐온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차를 사라고 아우성쳤다. 알뜰 소비자들까지 최면에 걸린듯 용감하게 구매에 나섰다.
물론 감정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진로가 위기에 빠졌을때 「두꺼비를 살리자」며 진로소주를 마셔댄 애주가들이나 배고팠던 시절을 떠올리며 모처럼 삼립빵을 사들고 다니는 중년세대의 모습은 아름답기조차 하다. 그러나 『기아가 독립운동을 하다 박해받은 것이냐』는 한 독자의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만 하다. 그는 『거국적인 흐름에 재뿌리는 것 같아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경제문제 해결에 이런 감정적 방식은 정답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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