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라 날마다 궂은 비가 내릴 때에는 지루하고 습기에 젖어 빨리 개었으면 싶더니, 막상 장마도 지나니 날마다 뜨거운 햇살에 지겨운 생각이 든다. 또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마다 살인이니, 10대 성문란이니 하는 불상사며 사회와 정치판의 혼탁한 소리마저 있어 짜증스럽고 더욱 덥다. 사람은 이래도 저래도 불평할 구실이 있으니 참 변덕스런 존재이다.여름철의 무더위를 식히는데 우리시대에는 선풍기나 에어컨 같이 찬바람을 일으키는 수단이 있지만 옛날 조상들은 어떻게 무더위를 이겨냈는지 딱한 생각이 든다.
경주에 가면 석빙고가 있어 신라의 왕공들은 여름을 나기 위해서 얼음을 저장하는 기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에도 동빙고와 서빙고란 이름이 남아있어 겨울철에 한강얼음을 떼어다가 저장하여 여름철에 쓰는 지혜가 전승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세시풍속에 어린 아이들이 정월 상원날에 더위팔기를 했으며 단오날에는 임금은 공조에서 진상한 부채를 가까운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니 그것이 단오선이고, 또 선비들 사이에는 부채에 글귀를 적어넣거나 그림을 그려서 서로 선사했으니 여름더위를 부채로 막아 시원하게 지내라는 뜻이 담겨있었다.
막상 복더위를 맞이하면 여러 지혜를 발휘했다. 방에서 잠을 자기엔 답답하여 바람을 찾아 뜰에 평상을 내놓고 죽부인을 옆에 끼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도처에 약수라 불리는 명천이 있다. 큰 산 골짜기에는 여름에도 이가 시릴 정도의 찬물이 솟는 샘이 있었다. 심한 땀띠도 약수로 씻으면 낳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약수터를 찾아 물을 마시고 몸을 씻고 발을 담그어 탁족을 했다.
탁족은 가장 손쉬운 피서법이다. 가정에서도 대야에 물을 떠놓고 발을 담그면 된다. 발바닥의 신경을 자극해서 전신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온몸을 적시는 목욕도 좋지만 나체를 수치로 알고 꺼리던 조상들은 발만 담그는 탁족을 즐겼다. 요즈음 피서라면 바다로 몰리고 있으나 선조들은 심산유곡 약수터를 찾았다.
여름철 더위를 잊기 위해서 야외로 나가는 행사에 선비들이 시심을 읊고 풍류를 즐기는 시회가 있었고 서민들은 끼리끼리 모여 노는 천렵이 있었다. 경치좋은 곳, 정자나 냇가에 모여 자연을 완상하고 노래하고 물고기를 잡아 안주삼고 목욕하며 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이 때에 농악을 곁들여 흥을 한층 돋우기도 했다.
6월 보름날은 유두날인데 동쪽 개울에 가서 머리를 감아 상서롭지 못한 것을 떨고 음식을 차려 먹으니 이것이 유두연이다.
동쪽을 의식한 것은 동쪽이 양기가 왕성하고 소생, 재생을 상징하기 때문에 여름철 탈 없기를 바라는 소박한 민간신앙에 의한 것이며 이때의 음식으로는 냉국, 화채, 국수가 있었다.
여름철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 차가운 음식을 즐겼으나 그와는 정 반대로 뜨거운 음식으로 이열치열의 방법도 있었으니 삼계탕, 보신탕이다. 더위에 시달려 기운이 없을 때에 자양분 많은 뜨거운 음식으로 보신하는 것이다. 여름철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시원하다」고 하는 것은 외국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인의 심성이다.
더위는 밖에서 오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때로 안에서 솟는 더위도 있다. 밖으로부터의 더위는 부채, 냉수, 얼음으로 식힐 수 있지만 안에서 솟는 더위는 문명의 이기로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 조상들은 속에서의 더위를 더욱 경계했다. 속상하는 일, 분개할 일, 화나게 하는 일이 있으면 마음의 안정을 잃고 더위 이상의 더위를 맞게된다. 그래서 선조들은 이를 초월하고 인내하고 극복하는 지혜를 교양으로, 인격으로 여겼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심화를 부추기는 일들이 즐비하다. 사회의 무질서, 정치판의 혼탁, 쑥스런 일들이 우리를 화나게 하고 있다. 참으려 해도 때로는 심화가 나는 일도 있다. 그럴 때의 더위는 다른 더위와 비교되지 않는다. 삼복더위에 시달리는 판에 심화마저 자극하니 왜들 이러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조상의 지혜가 아쉽고 초월한 마음으로 유유자적해서 무더위를 이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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