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신한국당 대선후보가 결정됐다. 그런데 대선후보 경선과정을 더러운 정치로 간주하는 논객들이 많다. 한국정치가 아직도 패거리 짓기, 줄 세우기, 인신공격, 흑색선전물, 지역대결구도로 점철되어 있으며 이것들이 모두 후진적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악의 요소, 후진적 정치는 정치의 본원적인 요소다. 미국정치에도 있고, 일본정치에도 있으며 미래정치에도 있을 것이다.우리나라의 경우 정도가 심할 뿐이다. 패거리 짓기는 조선왕조의 사색당파에 비교될만큼 그 뿌리가 깊다. 그러나 정치는 몇개의 파벌로 이루어지고, 그것이 정당이 되는 것이다. 개인이 모여서 소집단(파벌)을 이루고, 소집단이 모여서 대집단이 된다. 성품 성향 학맥 고향맥은 소집단(파벌)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합종연횡을 더러운 정치, 후진의 정치로 간주하는 논객들은 지나친 이상주의자들이다. 어느 한 사람이 정당을 지배하고 있다면 몰라도 다수의 지도자가 하나의 정당을 이루고 있다면 합종연횡은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 아닌가? 필자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일하면서 미국시민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레이건정부가 몇개의 공화당 파벌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았다. 록펠러 사람들, 베이커사람들, 그들 모두 골드워터-레이건 파벌과 「나눠 먹기」정치를 하고 있었다. 일본의 자민당은 여러 파벌의 합종연횡이 아니었던가? 한국정치는 일인지배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합종연횡을 못마땅하게 보는 것 같다. 그러나 합종연횡은 민주주의 정치의 필요한 요소다.
계보관리비·사조직운영비 등 한국의 돈정치는 문제가 된다. 계보를 관리하기 위한 돈은 일본식 보스정치가 한국에 이식된 것이며 돈으로 부하의 마음을 속박하고 있는 건달 정치꾼들이 아직도 많이 있음을 말한다. 투명한 정치자금관리법을 만들어 모든 정치인의 자금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알 수 있도록 자금의 흐름을 전산화해야 한다. 미국의 연방선거관리위원회를 모형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 아직도 한국정치에는 투명한 정치자금이 보이지 않는다. 땀흘려 일하지 않는 자들이 정치가라는 직업으로 잘 살고 있음은 이해하기 어렵고, 용서하기 어렵다.
인신공격은 선거철에 나오는,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공격이다. 보수주의의 틀 속에 갇혀 있는 정치인들은 정책의 공방이 아닌 개인의 성품이나 스캔들을 공격의 소재로 곧잘 등장시킨다. 클린턴의 여자관계는 개인적인 것이며, 베트남전 기피는 이데올로기적인 것이었지만 미국인들은 대통령의 자질을 비판하면서 인신공격형 요소를 평가절하했다. 클린턴은 부시 대통령과 돌 상원의원과의 경쟁에서 인신공격을 많이 받았지만 승리했다. 시민의 판단이 중요하다.
정치란 더러운 요소도 안고 있다. 또한 꿈꾸는듯한 요소도 안고 있다.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이 많이 들어있다. 인간이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마냥 이성적이고, 합리적이 된다면 정치는 재미없는 것이 되고 만다.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김영삼 대통령은 60대에 정권을 잡았고, 그의 카운터파트였던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는 지금도 정권을 잡으려 하고 있다. 그래서 어찌보면 정치는 재미있다. 권력이 갖는 달콤함이 없다면 누가 대통령직을 원하겠는가? 달콤함은 권력의 위력이다.
한국의 논객들이 바라는 깨끗하고 이상적인 정치라면 어느 누구도 대통령을 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대통령직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큰일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은 그를 지지하고 성원한 사람들을 내각에 기용하고, 정부공사에 기용하고, 거기서 보람을 찾는다. 일종의 엽관제도이다. 18, 19세기 정치에서는 엽관제도를 통해 아무나 정부의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나 21세기에 들어서면 아무나 고위공직을 차지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정부의 일이 전문화되기 때문이다.
또한 패거리짓기, 줄세우기가 전문화되어 있지 못한 것이 한국정치의 후진성이다. 그러나 패거리짓기, 줄세우기를 거부한다면 정치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정치를 이상주의적으로 생각하는 논객이 많을수록 정치에 실망하는 시민도 많을 것이다.
정치에 대한 현실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돈 안드는 정치는 없다. 환상주의적 논객들이 한국엔 너무나 많다. 그것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서울 시립대 객원교수>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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