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 우려 ‘소신’보다 ‘안전진료’ 경향/근본원인은 의사환자간 믿음상실 일수도『한번 제왕절개수술을 했으면 언제나 제왕절개수술을 하여야 한다』.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격언처럼 전해져 오는 이야기다. 왜 복벽을 통하여 아기를 출산하는 수술을 제왕절개술(Caesarean Section)이라 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이 수술로 태어나서 이러한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전설처럼 전해져오고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어쨌든 이름은 제왕절개술이다.
그런데 제왕절개술로 아기를 낳는 사례가 우리나라에서 최근 10년간 3.8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의료보험관리공단 통계에 의하면 공단 피보험자와 그 가족이 제왕절개술로 분만한 건수가 85년 2,611건에서 90년 6,600건, 95년 9,900건으로 급증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제왕절개수술비로 공단측이 병·의원에 지불한 돈이 85년 8억 6,600만원에서 95년에는 그 액수의 5.8배인 50억 5,800만원에 달했다. 왜 이렇게 제왕절개술이 증가하는가?
제왕절개술로 아이를 낳는 사례가 이처럼 급증하는 것은 의료기술 발달과 여성의 골반약화, 주부들의 선호 등이 원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연분만에 비해 제왕절개에 따른 진료수입이 훨씬 많기 때문에 의사들이 은연중 임산부들에게 제왕절개를 유도하기 때문인 것도 사실이다. 미국도 지난 20여년간 제왕절개에 의한 출산이 4배나 증가했다. 65년에 4.5%였던 것이 95년에는 21.8%로 늘어 미국에서 가장 흔한 수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면 무슨 이유 때문인가. 추정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난산의 위험이 높은 초산부와 노령 임산부의 증가, 전자 태아감시장치의 등장으로 인한 태아곤란증의 조기발견, 반복 제왕절개술의 증가 및 의료분쟁에 대한 관심의 증가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교과서적인 이유는 구미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다. 그러면 이것으로 모두 설명이 되겠는가? 그렇지가 않다. 개인적인 소견인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문제는 의사와 환자사이의 신뢰감의 상실이 원인이 아닌가 싶다.
믿음의 상실로 모든 사건이 분쟁화 하는 것은 요즘의 추세이다. 하지만 의료사고 분쟁에 대한 산부인과 의사들의 느낌은 거의 공포(Phobia)수준이다. 특히 개원의의 경우엔 더욱 심각하다. 의사들이 환자를 진료할 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명쾌한(?) 이유를 댈 수 있게끔 원칙에 입각한 경직된 진료를 하는 것이 제왕절개술을 증가시키는 무시못할 원인이 되고 있다.
환자의 순산을 위해 긴장하는 것보다 뜻하지 않게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의료사고의 원만한 해결을 미리 걱정하고 겁먹는 상황에서는 환자를 위한 의사의 소신있는 진료는 설 자리가 없다. 기계가 내뱉는 그래프나 검사지에 의존하는 증거가 확실한 진료가 있을 뿐이다.
진료수입을 올리기 위해 임산부들에게 수술을 유도하는 의사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흰 가운안에서 환자진료를 경영으로 생각하며 진료비를 계산하고 있는 의사도 있을 것이다. 부르기 좋은대로 악덕의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다수의 산부인과 의사들은 손가락질받지 않고 의업을 해나가기 위해 정말 피튀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수술시기가 늦어져 산모와 아기의 상태가 나빠진 것 아니냐고 따지는 일이 다반사인 상황에서 어떻게 기계의 경보음을 무시하고 의사의 소신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엄청난 뒷감당을 누가 해주겠는가.
반복제왕절개수술을 하지 않고 정상분만을 하게 해 달라는 시한폭탄같은 분만환자를 밤새 지키는 수련의의 애환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제왕절개술의 증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신풍조와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선의가 왜곡되고 그에 따른 자기방어적인 진료형태가 거듭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전에는 제왕절개술이 어쩌면 하나의 의료과소비 형태로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있는 사마의를 놀래킨 고사처럼 죽은 시저의 전설이 우리의 임산부를 속절없이 제왕절개술의 블랙홀로 빠져들게 하는가. 슬픈 일이다. 슬픈 일이 어디 우리 의료현실 뿐이겠냐마는….<경희의료원 산부인과 과장>경희의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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