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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 ‘귀신들’(황종연의 소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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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 ‘귀신들’(황종연의 소설 읽기)

입력
1997.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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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대한 우리시대의 물음표이선의 소설집 「귀신들」이 주는 인상은 저자가 매우 능란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이다. 이야기꾼의 여러 자질 중에서도 그는 특히 유창한 입담을 갖추고 있다. 그의 소설에서 비중이 높은 작중 인물들의 대화는 물론 서술자의 생각을 전하는 지문에서도 구어 표현은 수다스럽게 느껴질만큼 활달하게 펼쳐진다. 그의 어느 작품에서는 「왈왈거리다」 「퉁퉁거리다」 「쫑알거리다」 「구시렁거리다」 등의 어휘들이 보이는데, 그것들이 예시하는 특정 형태의 말하기, 즉 사람들 사이의 구체적인 사회적, 심리적 관계를 실어나르는 말하기의 모방은 이선 소설의 특징에 속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선의 소설을 지배하는 구어체 담론은 단순히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의 복사가 아니라 호응, 갈등, 대립의 관계에 있는 인간생활의 언어적 표지(표식)이다. 그의 소설에서 문제가 되는 작품 대다수는 가족주의적, 가부장제적 관습이 남아있는 여러 가정의 일화를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 아직도 뿌리깊게 남아 있는 가족 유대의 신화를 재고하도록 요구한다. 가령, 가족이 사람들의 일체적 결합의 모형이라는 식의 통념에 그의 소설은 강력히 도전한다.

「형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며」는 월남전에 참가해 목돈을 벌어왔으나 고엽제 후유증으로 죽은 한 남자 집안의 사연을 들춰내면서 개인의 희생을 은연 중에 강제하는 가정의 폭력에 주목하게 한다. 또 막내딸로 인한 가산의 손실을 둘러싸고 가족이 분란을 치르다가 반목하고 만다는 소설집 표제작은 가족이 위장된 이기적 욕망의 소굴에 불과함을 알려준다.

「귀신들」에서 두드러진 주제는 가족의 탈신비화이지만 그렇다고 가족의 분열에 개인주의적 환호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근래의 가족비판 소설과는 달리 이선의 소설은 서로 의지하는 삶의 행복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마지막 오후」나 「붉은 덩굴장미」같은 단편의 살가운 여운은 바로 그 기억의 산물이다. 생생한 구어체에 능한 소설에서 사랑의 윤리를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사람 사이에 살아있는 말을 추구한다는 것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긍정과 통하는 것이 아닐까.<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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