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인터넷 등 양방향 네트워크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정보운동단체들/각종 이슈의 개선책·대안을 제시하고 대중에게 열린 언론을 제공한다고대 아테네 시민들은 야외 집회장소인 「아고라(AGORA)」에 모여 정치와 사상을 토론했다. 중요한 문제가 생기면 직접 나서 권한을 행사했고 다수결로 의사를 결정했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비판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산업사회의 생활이 복잡해지면서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여겨졌던 「아고라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말았다. 정치는 일부 위정자의 「소유물」이 되었다는 지적을 받는가 하면 의사결정과정에서 국민들이 소외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시민이 직접참여하는 「전자 민주주의」가 새롭게 싹트기 시작했다. PC통신, 인터넷 등 양방향 네트워크가 만들어 내는 아테네식 민주주의가 「사이버 민주주의」로 움트고 있다.
이같은 사이버 데모크라시는 특히 「정보통신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외국에서 8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시민운동이 우리나라에도 상륙, 인터넷바람을 타고 새로운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현재 20여개의 정보통신운동단체가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마련하고 정보공유는 물론 단체간의 연대를 강화하는 등 가상공간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가상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양방향의 참여와 토론이 가능하고 흩어져 있는 개별단체들을 손쉽게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 개발네트워크(KSDN) 김성수(43) 한국본부장은 『이들 단체는 무엇보다도 정보의 독점화에 반대하며 누구나 공공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전자민주주의의 공간」확보를 위해 힘쓰고 있다』며 『이제는 통신공간을 벗어나 여론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정보운동을 펼치는 국내 시민단체들은 크게 두종류. 하나는 YMCA,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여성단체연합과 같이 현실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단체들이다.
또 다른 하나는 통신연대, 시민네트워크협의회(CP넷) 등에 소속된 온라인상의 진보단체들이다.
가상공간의 시민운동은 뒤늦게 뛰어든 시민단체들보다는 정보운동단체들이 앞서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홈페이지를 통한 홍보 이외에는 뚜렷한 활동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시민단체 정보화협의회」로 연대를 모색중이며 특히 환경운동연합은 해외단체들과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외치는 정보운동단체들은 88년 사설게시판(BBS)을 시작으로 PC통신과 인터넷의 영향을 받아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자체적인 네트워크와 홈페이지를 CP넷으로 묶어 정보공유 및 사업연대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단체는 정보연대 싱(SING), KSDN, 시민사회인터넷, 참세상 등이다.
「바른정보통신을 위한 모임」 「찬우물」 등이 모인 통신연대는 지난해 「정보통신검열백서」를 출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페미네트」는 여성정보화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여성들만의 전자공간. 인권운동사랑방은 94년부터 인터넷에 인권과 관련된 「인권하루소식」과 속보를 제공하고 있다. 부산의 「부산정보연대」, 전주의 「정보민주주의를 위한 네트워크사업단」 등 지역단체들도 잇달아 가세하고 있다.
사이버단체의 활동무기는 홈페이지와 각종 게시판, 전자우편주소록(메일링리스트). 여기를 무대로 각종 정보를 주고 받고 신속하게 의견을 조율한다. 외국의 네트워크와 연계해 정보공유도 활발히 이뤄진다. 최근의 정보운동으로는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정철회를 위한 통신지원단 활동, 전기통신사업법 개정반대, 정보통신 검열철폐 운동 등을 꼽을 수 있다. 얼마전부터는 공동대책위를 구성해서 전자주민카드 도입반대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정보연대 싱 오병일(26) 대표는 『정보통신운동은 지역주민의 참여통로를 확대하고 지역네트워크를 점차 연결해서 모든 대중이 정보를 평등하게 공유토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이유진(정치학) 교수는 『정보운동단체들은 가상공간을 통해 적극적인 개선과 대안을 제시하고 대중에게 열린언론을 제공함으로써 21세기 아테네식 민주주의를 부활시키려는 개척자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선…/84년 국제산별노련이 전자우편 이용 첫 활동/시민단체·NGO 묶은 APC가 대표적 단체
선진국에서는 인터넷 시민운동이 80년대부터 움트기 시작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산별노련(ITS)」이 84년 전자우편을 이용해 산별노조들을 연결, 조직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후 많은 단체들이 가상공간에 잇달아 둥지를 틀었다.
두드러진 단체는 인터넷상의 세계 시민운동단체와 비정부기구(NGO) 등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은 진보통신연합(APC)이다. APC는 정보공유의 필요성을 느껴 87년 영국의 그린넷, 피스넷을 중심으로 태동했으며 90년 스웨덴의 노드넷, 캐나다의 웹, 브라질의 얼터넷, 니카라과의 니카라오가 가세해서 재단의 형태를 갖췄다. 이들은 21개국의 네트워크 연합체로 발전했으며 현재 130여개국에서 4만여명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컴퓨터가 핵무기제조에 사용되는 것을 우려해 81년 탄생한 컴퓨터전문가들의 모임인 CPSR ▲사생활침해, 정보평등권 등 시민권리를 보호하기위해 91년 설립된 EFF ▲100만명의 회원을 확보한 미국 청년정치압력단체인 Lead or Leave ▲컴퓨터 프로그램의 자유로운 사용을 주장하며 저작권(Copyright)에 반대해 카피레프트(Copyleft) 개념을 만들어 낸 FSF가 있다.
또한 지역사회공동체 스스로 네트워크를 구성해 다양한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풀뿌리 전자민주주의를 이루려는 미국 클리브랜드의 프리넷, 샌프란시스코의 웰, 노스캐롤라이나의 캐롯스웹 등도 주목받고 있다.<전국제 기자 stevejun@korealink.co.kr>전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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