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남자가 속이 넓다고/윤명제(여자가 본 남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남자가 속이 넓다고/윤명제(여자가 본 남자)

입력
1997.07.19 00:00
0 0

「남자란 대통령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거나 지극히 돈을 좋아하는 유기체(?)다」 연일 신문지상을 덮는 기사를 읽자면 이런 엉뚱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도 같다.그러나 내가 아는 그 남자는 다르다. 대통령을 원하는 것같지는 않고 돈을 밝히는 삶도 아닌듯 싶다. 미남도 아니며 연애소설의 주인공처럼 자상하고 감성적이지도 않다. 한마디로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숱하게 만날 수 있는 그저 밋밋한 남자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직장인이다. 특징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특히 여성) 잘못을 예사로 지나치지 않는 태도이다. 그는 남녀노소, 아래 윗사람 누구에게나 관심이 많고 주변의 갖가지 소문에도 매우 민감하다. 언젠가 직장동료가 운전중 빙판길에 미끄러져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다. 운전자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그런 사고였다. 상대방도 당사자도 다친 곳은 없었고 차 수리도 보험회사에 맡겨 곧 수습되었다. 그러나 사고가 수습되는 동안 그 남자가 보인 관심은 정도를 지나치는 것이었다. 사고 당사자에게 위안과 격려를 보낸 것이야 여느 사람과 같았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동료의 교통사고를 이야깃거리로 삼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헌데 이어서 그는 자신이 과거에 보았던 끔찍한 교통사고 현장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교통사고에서 예상되는 골치아픈 문제점과 후유증 등을 매번 시시콜콜 늘어놓았다. 그 정도면 도움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운전중에 졸았던 것이 틀림없어. 밤엔 뭐했을까?』 『구속이라도 되면… 여자는 더 고생한다더라』 『사는 집은 분당인데 사고지점이 종로라니 혹시 외박했던 것은 아닐까. 들리는 소문으로는 요즘 가정불화도 있다던데…』같은 걱정까지 듣고 있자면 동료의 사고를 염려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결점이나 불행한 소식을 들먹거린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언제나 좋지 않은 방향으로 먼저 해석했고 또 은근히 안 좋은 소문이 퍼져나가도록 부채질을 했다. 사고를 낸 동료가 지금보다 불행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는 그런 태도가 상대방을 배려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할 것이다.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믿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를 볼때마다 다른 사람이 불행해져야만 속이 풀리는 남자라는 느낌을 받는다. 「남자」라는 통념에는 속이 넓은 것도 들어있지만 세상을 살아보면 통념같은 남자는 정말 찾기 힘들다. 대통령이 되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남자도 있으니, 다른 사람이 불행해지기를 기다리는 남자도 있을 법하다.

윤명제씨는 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당시 심사위원들이 남자로 생각했던 소설가. 18년동안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임상심리전문가로 근무하기도 했다. 51년 인천에서 나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에서 남편 아들 딸과 함께 살고있다. 본명은 지명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