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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염려스러운 ‘어른’들/조혜정 연세대 교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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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염려스러운 ‘어른’들/조혜정 연세대 교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7.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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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생들이 포르노 비디오를 직접 출연해서 만들었고, 또 팔았다고 온 나라가 난리가 났다. 그러나 아이들이 살고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어른에게 이 일은 실은 그리 놀랄 일이 못된다.「가족과 성 상담소」에서 올해 실시한 남녀 중고생 대상 성의식 실태조사에 의하면 여고생의 57.2%, 남고생의 60.8%가 이성 친구와 손을 잡아 보았고, 여고생의 29.6%, 남고생의 39.1%가 포옹·키스를 경험하였다고 한다.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중학교 2학년 정도의 남학생들에게는 포르노를 보지 않을 권리는 주어져 있지 않다. 또 친구들에게 「선망의 눈길」을 받고자 하는 그 또래의 여학생이라면 그녀에게는 「섹시」하지 않아도 될 권리가 「없다」.

지금 10대들은 텔레비전과 함께 자란 영상세대이며 소비상업주의를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다. 그들은 성은 좋은 것이고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일상적으로 듣고 보며 자랐다. 이 아이들은 최근 한차례 매체 돌풍을 몰고왔던 나체모델 이승희의 섹시한 표정이나 아름다운 여배우 샤론 스톤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 걸로 넣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광고화면을 몸으로 「느낀다」. 이들은 실제로 성적으로 매력이 있어야 취직도 잘되고 결혼도 잘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빨간 마후라」사건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불거져 나온 한 작은 사건이다. 사춘기를 거치고 있는 몇몇 조숙한 아이들이 성적인 놀이를 했을 것이고, 그것을 비디오로 찍는 취미를 가진 아이가 있었을 것이고, 마침 비디오를 찍었는데 생각보다 잘 찍혀서 친구들에게 보여주었을 것이고, 그것을 본 친구중에 돈 버는데 일찍 눈 뜬 아이가 복사해서 팔았을 것이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아이들은 구속되었고, 「빨간 마후라」류의 비디오물이 인기를 끌 것이며, 세태를 한탄하던 이들의 호통소리에는 힘이 실렸다.

사실상 도덕적 엄숙주의와 선정적 상업주의는 돈이면 무엇이든 하는 천민 자본주의를 계속 굴러가게 하는 「한 몸체의 두 얼굴」이다. 지금 언론에서는 이 아이들을 구제불능한 「나쁜 아이들」로 낙인을 찍어 격리시키려 하고 있지만 바로 그 언론이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 이들을 스타로 추켜세울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상업주의시대의 문법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데 정작 상업주의보다 더 염려스러운 것이 있다. 부모중에 가장 무책임한 부모는 아이를 두고 통탄하는 부모일 것이다. 자신의 아이가 그렇게 될 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는 부모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부모가 아닌가? 그렇다면 자라나는 세대의 세태를 두고 통탄을 하는 나라의 「어른」들은 어떤가? 지금 일고 있는 「10대 때려잡기」 움직임을 보면서 정작 염려스러운 부분은 10대가 아니라 바로 「호통」치는 어른들의 세계이다.

배가 고픈 시대에는 식욕과 물욕이 삶의 동기가 되고, 관계의 끈이 끊어져 가는 시대에는 성욕이 삶의 동기가 된다. 압축적 경제성장기를 거친 우리 사회는 지금 「식욕 중심적」 기성세대와 「성욕 중심적」 신세대가 서로를 무슨 낯선 짐승을 대하듯 바라보고 있다.

농경적 시간에서 탈근대적 시간까지를 한 세대 안에 여행해야 했던 이들에게 그 엄청난 변화를 다 소화해 내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달리 피해 갈 길은 없지 않은가? 통탄과 호통의 소리는 합리적 해결에 반비례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다음 세대를 밀어 내치지 않고 끌어안을 수 있는 어른들이다. 폭력과 섹스를 통해 존재의 허무와 순수를 말할 수 밖에 없는 21세기적 문법을 좋아하지 않아도 좋다. 적어도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려는 의지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마침 인터넷에 10대들만의 이야기마당을 꾸리고 있는 한 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부와 언론이 마치 10대들과 전쟁을 하려는 것 같지 않니?』라고 묻는 내 물음에 아이는 껄껄 웃으며 말한다. 『전쟁은 무슨 전쟁이요? 학살이지』 금방 변성기를 지난 이 아이의 영감같은 목소리에 짙은 냉소주의가 깔려 있다.<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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