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무리한 자금회수 파국 초래/재벌 차입금 의존 몸집키우기 막고/기아 ‘국민의 기업’으로 살릴 지혜를재계 8위인 기아그룹이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벼랑끝에 섰다. 이로써 올들어 한보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에 이어 기아까지 6개그룹이 이미 쓰러지거나 붕괴위기에 몰리게 됐다. 기아그룹은 15일 부도방지협약 대상업체로 지정되어 일단 부도처리는 면했다. 그러나 경영부실이 심각하여 단시일 내에 회생이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5,000여개의 협력업체들이 연쇄부도의 위기에 처해 있어 파장이 심각할 전망이다. 문제는 산업전반에 걸쳐 기업붕괴 도미노 위기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2년전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출범이후 국제경쟁력을 잃기 시작하면서 구조적 위기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후 연간 1만 2,000개 이상의 중소기업이 연이어 부도가 났다. 그리고 대기업들의 기반까지 흔들리면서 규모와 관계 없이 무차별적으로 기업도산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초대형 재벌그룹을 제외하고 부도위기를 느끼지 않는 기업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이런 추세로 나갈 경우 우리 경제는 모래위의 성처럼 어이없이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여기서 더욱 문제는 기업의 연쇄부도로 금융불안이 확산되는 것이다. 기아그룹의 붕괴소식이 전해지자 주가가 떨어지고 금리가 오르는 등 금융불안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의 자금공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기업들의 연쇄부도는 불붙듯이 번져 나갈 수도 있다. 금융권은 이미 최근 부도가 철강 건설 섬유 유통 자동차 등 전업종에 걸쳐 확산되고 있음을 중시하고 신규대출을 줄이고 기존 여신을 회수하고 있다. 금융권이 자기보호책을 강화할 경우 기업과 은행이 동시에 쓰러지는 심각한 자해행위가 나타날 수 있다. 기아그룹사태도 제2금융권의 자금회수가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알 필요가 있다.
기아그룹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차입에 의존한 외형 위주의 투자정책이 불러온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금융기관 돈을 끌어들여 무모한 시설확장을 한 상태에서 자동차 시장의 불황이 닥치자 적자에 쪼들려 손을 들고 만 것이다. 기아는 시장에 대한 정확한 수요예측도 없이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서 대단위 자동차 공장을 짓고 국내에서 특수강 시설을 착공하는 등 무리한 투자를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기아그룹의 부채는 9조 5,000억원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구조적인 경영위험은 국내 모든 재벌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기아사태는 기업의 붕괴에는 성역이 없음을 아픈 교훈으로 남겼다. 기아의 경우 세계 17대 자동차 회사이기는 하나 뚜렷한 고유기술의 축적이 없었다. 따라서 국제시장에서는 물론 국내시장에서도 경쟁우위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동차 산업의 과당경쟁이 심화하자 패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는 기술경쟁력이 없는 기업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입증하는 것이다.
기아그룹의 위기는 10대 그룹의 붕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국내기업들의 연쇄부도와 불황의 심화가 예사롭지 않다. 오랜만에 찾아온 경기회복 조짐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더구나 우리경제의 국제신용도 추락이라는 측면에서 한보그룹부도 이상의 피해가 예상된다. 해외 금융기관들이 국내기업들에게 자금공급을 중단하거나 금리를 높게 부과할 경우 우리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기아는 관련 금융기관들이 부도방지협약을 적용한 만큼 무슨 일이 있어도 회생시켜야 한다. 부실계열사와 부동산을 매각하여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부실투자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경영진을 교체해야 한다. 기아를 새롭게 살리는 것을 계기로 적극적인 산업구조개혁을 추진하여 경쟁가능한 경제발전 체제를 재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아그룹은 소유를 분산한 상태에서 전문경영인과 종업원들에 의해 경영되어 온 우리나라 자본주의 발전의 표본이 되는 기업이다. 우리나라 기업풍토상 정경유착의 배후가 없이 그만큼 커 온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즉 기아그룹은 건전한 자본주의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 기업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만큼 기아에 대한 부도방지협약 적용은 우리나라 자본주의의 부도방지협약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힘의 논리에 의해 다른 재벌기업에 넘겨서는 안되며 국민의 기업으로 기아를 살리는데 지혜를 모으는 것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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