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불황속 과당경쟁 큰 영향/구조개편 문건후 자금난 결정타줄기찬 인수합병(M&A)설과 금융권의 무차별적 여신회수공세에 국내굴지의 자동차 종합메이커인 기아그룹이 마침내 손을 들었다.
최근 2개월간 심각한 자금난을 겪어 왔던 기아그룹은 15일 부도방지협약 적용대상기업으로 선정돼 일단 도산위기는 모면하게 됐지만 대농 진로처럼 어떤 형태로든 부실기업정리의 길로 접어들 수 밖에 없게 됐다.
기아그룹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무리한 투자와 자동차업계의 과당경쟁에 있었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불황기의 구조조정과정에서 자동차 3사간 「사활」을 건 신차경쟁은 현대 대우에 비해 자본력과 시장망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인 기아의 입지를 더욱 비좁게 만들었다. 특히 95년 하반기부터 주력차종으로 개발한 크레도스 판매량이 기대치에 못미친 것과 대우자동차의 잇단 신차출시는 기아에 결정적 타격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기아의 붕괴는 아시아자동차 기아특수강 등 계열사 부실이 더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실 기아자동차만 보면 지난해 7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고 올해도 6개월간 전년동기대비 36% 수출신장(18억달러)을 기록하는 등 현재도 현금흐름에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아시아자동차(2백94억원적자) 기아특수강(8백95억원적자) 등 엄청난 적자를 내고 있는 다른 주요 계열사들의 부실은 결국 모기업인 기아자동차, 나아가 그룹전체의 부실(적자규모 1천2백91억원)로 연결됐다. 특히 국내수요가 연 10만톤에 불과한데도 1조원의 자금을 투입, 무려 72만톤규모의 특수강공장(군산)을 세우는 등 무리한 확장으로 기아는 자금난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사·경영진 갈등도 「주인없는 기아」를 흔든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아를 준부도상태로 몰고간 보다 직접적 요인은 삼성자동차 보고서파문과 이로 인해 금융권에 확산된 M&A루머였다. 94년 삼성생명의 기아자동차 주식매집사건이후 시중에선 『언젠가는 삼성자동차가 기아를 삼키게 될 것』이란 추측이 끊이질 않았고 최근 기아자동차 인수계획을 담은 삼성자동차 보고서파문으로 M&A설은 더욱 증폭됐다.
한보사태이후 무정부상태에 빠진 금융시장에 퍼진 M&A설은 기아그룹을 제2금융권의 집중적인 여신회수표적으로 만들었다. 제일은행 고위관계자는 『지난달 중순부터 종금사들이 아시아자동차 등 기아그룹 발행어음을 하루 평균 1천5백억원씩 돌렸다』며 『이런 「집단행동」에 당할 기업은 없으며 주거래은행의 지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김선홍 기아그룹 회장이 강경식 경제부총리를 방문, 제2금융권의 여신회수방지를 위한 정부차원의 지원을 요청하고 제일은행이 8백억원의 긴급자금을 지원하는 등 정부와 주거래은행을 중심으로 「기아회생작전」이 시작됐지만 종금사들의 어음돌리기를 막기엔 역부족이고 타 은행들도 「협조융자」를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빚규모면에서 재벌랭킹 7위(9조5천억원대)인 기아그룹의 몰락은 대농 진로 등 다른 부도방지협약 대상기업과는 파장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비록 한시적으로 부도가 유예됐으나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대기업연쇄도산과 대외신인도 추락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경제적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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