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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없는 참정권(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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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없는 참정권(장명수 칼럼)

입력
1997.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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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퍼져 있는 한국 교포들 중에서 재일 교포처럼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없다. 자기 나라를 강탈한 적국에서 모진 차별을 견디며 살았던 원한과 상처를 외면하고 재일 교포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과거의 적국」에 살고 있는 갈등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국적은 싫다. 그러나 참정권을 달라』는 재일 교포들의 지방 참정권 요구는 그 갈등을 잘 드러내 준다.민단중앙본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방 참정권 획득 운동은 일본의 3,302개 지방자치제중 40%인 1,310개 지방의회로부터 승인을 얻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대도시 중에서는 오사카부(대판부)만이 승인하지 않고 있다. 조총련은 참정권 운동이 일본인과의 동화를 촉진한다는 이유로 지방의회 의원들을 일일이 방문 설득하는 등 맹렬하게 반대하고 있으나, 대세는 참정권 인정 쪽으로 기운지 오래다.

영주자에 대한 지문 채취 규정이 10여년에 걸친 재일 동포들의 투쟁끝에 93년 폐지되었듯이 외국인 지방 참정권을 얻어 내는데도 10여년이 걸렸다. 87년부터 시작된 지방 참정권에 대한 논의는 95년 2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을 얻음으로써 박차를 가하게 됐다.

『재일 동포들은 65년 한일 기본조약으로 영주권을 갖게 됐고, 각종 세금을 내면서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등 주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지방선거에 참여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요구다』

94년 민단 단장 선거에 입후보하면서 지방 참정권 운동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신용상(72) 단장은 그당시 30곳에 불과하던 참정권 인정 지자체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는 『일본에 귀화하지 않으면서 왜 참정권을 요구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재미 교포와 재일 교포가 자주 비교되는데. 그들의 정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랜 우방인 미국과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에 대한 감정이 같을 수는 없다. 미국 시민권을 받은 재미 교포는 주변에서 축하를 받지만,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 교포는 조국을 배신이라도 한 것처럼 그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국적을 바꾸더라도 결혼이나 취직 등에서의 차별은 여전히 남게 된다. 그러니 굳이 귀화할 절실한 이유도 없다』

그러나 귀화하는 숫자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50년대에는 년 1,000∼2,000명, 60년대에는 3,000여명 수준이었으나, 95년 처음으로 1만명이 넘었다. 해방후 지금까지 귀화한 사람은 20만명 정도다. 해방직전 190만명에 이르던 재일동포는 현재 65만명이며, 그중 20만명이 조총련 소속이고, 59년부터 80년대까지 1만여명이 북송됐다.

2세 3세로 넘어가면서 귀화는 계속 늘어나고, 귀화를 숨기려는 태도도 사라져 갈 것이다. 그러나 그 속도가 크게 빨라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민족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던 2세 3세들도 취업 등에서 직접 차별을 경험하고 나면 자기자신을 일본인과 구별해서 생각하는 의식이 싹트게 된다. 게이오대학을 졸업하고 미국계 투자회사에서 일하는 한 교포여성(31)은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이 교육열이 높았기 때문에 나와 동생 2명은 모두 좋은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공부했고, 성적도 뛰어났다. 한국인 차별에 대해서 듣기는 했지만, 우리가 차별받으리라고 상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원하는 직장 시험에서 계속 떨어졌고, 나중에는 외국인 회사로 가보라는 충고를 받았다. 내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귀화하지 않은 부모를 원망했지만, 귀화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에도 차별이 있지만, 공적으로는 소수민족을 배려하는 등 사회를 이끄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다. 일본에는 아직 그런 공정한 룰이 없다. 그렇다면 왜 귀화하겠는가』

『재일 교포는 일본에 거주하는 많은 외국인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라고 재일 동포들은 일본정부를 향해 외친다. 『재일 교포는 세계에 퍼져 살고있는 수많은 교포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라고 그들은 한국정부를 향해서도 외친다. 그들은 특별한 인식과 처우를 요구하는 특별한 존재다. 일본정부는 물론 한국정부도 그 점을 인정하면서 그들이 「특별한 존재」에서 벗어나는 것을 도와야 한다. 특히 한국정부에 대한 그들의 섭섭함을 주목해야 한다.<편집위원·도쿄(동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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