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성의 무대화는 연극의 한 흐름이다. 그것은 수입된 근대극이 갖고 있는 번역투와 과장의 껍데기를 벗겨내는 작업이기도 했고 동시대의 삶이 스며 있는 소재를 찾는 노력이기도 했다. 최근엔 일상적인 삶과 거의 차이가 없는 연기스타일이 무대를 수 놓는다.시립극단의 창단공연 「아버지」(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소강당)도 바로 「일상의 무대」였다. 김정현의 동명소설을 각색, 표재순이 연출한 이 공연은 지친 아버지의 죽음을, 일상적인 상황과 대사와 연기로 보여주었다. 매일 술에 취해 늦는 남편(전무송)에게 냉랭한 아내(예수정)와 자식들, 친구 장박사(박웅)와의 포장마차 술자리, 술집여자 소령(최슬)과의 연정 등이 그랬다.
완벽한 일상성의 무대는 방송드라마처럼 관객에게 쉽게 다가갔다. 종종 분위기를 풀어주는 개그식 연기도 한몫했다. 관객이 피부로 느끼고 있음이 가장 잘 드러난 순간은 아버지의 죽음. 객석은 단숨에 눈물바다로 돌변해 저마다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메아리치는 듯했다. 시민의 생활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시립극단의 「시민연극」 모색은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일상성을 넘어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연극의 또 다른 역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년의 위기에 대한 본질을 통찰하지 못함으로써 불치병에 걸린 아버지의 죽음만 강조되는 한계도 보였다. 연극 고유의 매력이 거세된 공연이 계속된다면, TV드라마를 포기하고 2시간20분간 극장에 앉아 있을 관객은 몇이나 될까. 「시민연극」의 방점은 결국 「연극」에 찍혀야 함을 역설적으로 암시해주었다.<김희원 기자>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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