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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의 나흘/한말숙 소설가(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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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의 나흘/한말숙 소설가(아침을 열며)

입력
1997.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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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말숙씨가 6월30, 7월1일 중국 베이징(북경)에서 열린 제2차 남북학술회의와 홍콩의 중국귀속을 맞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고 참관기를 보내왔다. 한씨는 이번 학술회의의 남측 참가자였던 황병기 이화여대 교수의 부인으로 자신의 소설 「아름다운 영가」의 중국어판 출판기념회 참석을 위해 베이징에 4일간 머물렀다.우리 일행은 6월29일 아시아나 비행기로 약 두시간만에 베이징의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캠핀스키호텔에 여장을 풀고 호텔 안에 있는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학술회의에 참가하는 학자와 기자 등으로 구성된 일행 20여명은 한자리에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처음 만나는 분들이었지만 무척 정겹게 느껴졌다. 그러나 백내장 수술후 3주도 채 안된 내 눈에는 먼 자리에 앉은 사람의 얼굴은 정확히 보이지 않았고 게다가 기억력도 신통치 않아 성함도 일일이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맨 끝자리에 앉아있는 한국일보의 젊은 기자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93년 중국에서 최초로 열린 국제음악제에 남편과 함께 초청받아 그 무서웠던 베이징에 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도 대우그룹이 25%의 지분을 지니고 있는 곳으로 베이징에서 가장 좋은 호텔 중의 하나였다. 4년전 묵었던 인터콘티넨탈호텔도 좋은 호텔이었지만 아침식단에 우유가 없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캠핀스키호텔의 아침뷔페를 접하고 국제화한 중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베이징의 거리는 온통 홍콩귀환으로 축제무드에 휩싸여 있었다. 내 소설 「아름다운 영가」를 출판한 베이징 사회과학원출판사는 중국인 번역자 두 사람을 마중 내보내고 호텔까지 승용차도 보내 주었다. 우리는 한시간동안 천안문거리 등 중요한 지역을 돌아다녔는데 화려한 장식 등이 나부끼는 천안문광장은 환상적이었다. 「홍콩귀환」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의 탑을 가리키는 옆사람의 음성이 조용하고 기쁨이 넘쳐있는 것 같았다. 당연한 일이지! 나도 기쁜데. 「홍콩의 중국귀속」은 중국의 경사일 뿐 아니라 동양인의 기쁨이 아닌가. 서양침략이 동양에서 종식을 고했다는 상징적인 사건이고 지구에서 침략이 없는 평화공존으로 향하는 희망을 갖게 하는 상징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중국어판 소설을 펴낸 사회과학원출판사는 중국의 대표적 연구기관에 속해있는 곳으로 여기서 내 장편이 출간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터라 이번 중국방문이 더 뜻 깊었다.

중국어판 책의 표지그림은 한눈에 예술가가 그린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아볼 정도로 탁월했다. 출판사 사장이 출판축하연을 베푼 음식점은 정부의 정책을 토론하고 비판을 하는 기관의 건물에 있었는데 마오쩌둥(모택동)시대에는 그런 기관이 없었다고 한다.

남북학술회의는 캠핀스키호텔의 3층에서 열렸다. 나는 학술회의의 정멤버는 아니기 때문에 참석할 의무는 없었지만 역사적인 자리를 지켜보고 싶어 참관했다. 북측은 20년전과 똑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또 남과 북이 통일과 평화라는 같은 주제를 두고 저렇게 다른 해석과 입장을 보이고 있나 싶어 한숨이 나왔다. 이튿날 마지막회의가 끝나갈 무렵,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회의가 열리는 3층회의장 앞 로비에 앉아 있으니까 오늘이 마지막날이고 이제 다시 남북으로 갈려가는구나 싶어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북측인사들에게 인민일보 6월11일자에 내 소설이 중국어로 번역, 출간됐다는 기사가 나온 것을 보여주자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서로 다투어 다가와 나와 사진찍기를 원했다. 한 핏줄이 아니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축하모습이었다. 나는 사진을 찍은 북측사람에게 『사진 꼭 보내주어야 해요』라고 소리를 쳤다. 그러나 그 소리는 메아리없이 호텔 로비의 넓은 공간에 가물가물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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