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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정체/박승평 수석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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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정체/박승평 수석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7.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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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안에서는 구속된 대통령 아들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는가 하면 모두가 숨죽여 고대했던 황장엽씨의 가슴 찡한 기자회견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역사상 처음이라는 여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여전한 금품살포와 흑색선전의 난무 등으로 마냥 혼탁으로 치닫고 있다고도 한다.밖으로 눈을 돌려봐도 나라안 사정에 못지않은 치열한 삶과 역사가 전개되고 있는 것만 같다. 홍콩의 중국귀속과 역사적인 식민지 시대의 증언, 「킬링필드」로 악명높았던 캄보디아의 또다른 불안이 문제되고 있는가 하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에서마저 지난해 11월의 대통령 및 의회선거에서의 선거자금 불법모금의혹을 파헤치려는 의회청문회도 열렸다. 조금 앞서서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집권당이 총선에서 내리 패배함에 따른 정치적 변혁의 태동이 우리에게도 어렴풋이 감지된바 있었다.

그런 변혁의 태동이 과연 나라밖에서만의 일로 끝날 것인가. 필자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이데올로기 분단국이라는 민족적 비극에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전직 대통령들에게 중벌을 내리고 현직 대통령 아들도 그냥 둘 수가 없는 혼탁과 갈등의 기로에 선 우리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는 그런 변혁의 기운에 따라 우리도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은 이데올로기나 힘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의 시대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라를 이끌 지도자가 갖춰야 할 제일의 덕목으로는 「사람다운 사람」, 「변화를 바라는 국민적 욕구에 부응할 수 있는, 남들과 조금은 다른 원칙과 포용의 사람」이라는 암시마저 아울러 제기되고 있다 할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블레어와 조스팽이 누구인가. 정치적 2분법으로 굳이 구분하자면 그들은 노동당과 사회당 소속이어서 보수 우익에 맞서는 좌성향 정치인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유럽의 정치무대에서 회자되고 있다는 유행어, 즉 『레프트(좌익)의 레프트(좌익의 뜻과 함께 잔재·나머지의 뜻도 가짐)는 뭔가』라는 표현을 음미해 보면 이제 공산당식 좌익이나 시장경제에 역행해 국유화를 주장할 좌익이란 세계무대에서 사라졌음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보면 블레어나 조스팽 선택이 뭘 의미하는지 분명해진다. 그 나라 국민들은 현 집권층이 영국에서처럼 비록 경제를 안정시켰을망정 변화를 모르는 진부한 정치행태나 리더십에 염증을 느껴 새로운 인물들을 선택한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런 선택배경에 비록 「이데올로기 대결의 종언과 무의미」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해도 너무나 뚜렷한 변화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문제로 되돌아가보면 바야흐로 진행되고 있는 여당의 대통령후보경선 과정에서부터 우리는 이미 그같은 변화기미와 욕구를 감지할 수 있다. 연령이나 세속적 「관록」차원을 떠난 뜻밖의 인기몰이 현상이 빚어지는가 하면 예상밖의 부침현상도 아울러 전개되고 있다. 우리도 드디어 오랜 독재시절의 망령과 굴욕감에서 벗어나 후보로 떳떳이 자기를 내세우고 정직하고 거침없이 그들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짚신에 편자박기」라는 표현처럼 시대적 기운이나 세계적 변화를 반영하려는 모처럼의 경선제도에 너무 어울리지 않는 「역류」사태이다. 경선을 위한 지역별 유세가 시작된지 며칠도 안되어 구시대정치의 온갖 작태가 어느새 슬그머니 안방차지를 하기 시작했다는 현실이 우리를 진정 슬프게 한다. 약삭빠른 재벌이 벌써 줄을 대어 돈을 퍼붓기 시작했다는가 하면 87·92년 선거에 못지않게 사조직이 활개친다지 않는가. 그리고 지금이 이방원의 「왕자의 난」시대도 아니면서 살생부와 온갖 음해마저 난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장엽씨는 어제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에게 「민족의 생명」문제에 대한 가슴절절한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정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재선의 클린턴마저 지금 청문을 당한다는데, 우리 정치가 87·92에 이어 97마저 청문을 당하는 길로 가겠다는 것인가. 국민의 선택이 새삼 중요해졌다. 그리고 그 기준은 비록 낙선할망정 돈뿌리기나 지역대결조장 등의 악습과 결코 타협하지 않을 정도의 사람됨됨이나 자기확신의 유무를 점검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경선에 나선 후보들이 모두 명문교출신의 두뇌명석한 인물들이기에 사람됨됨이가 더욱 중요한 기준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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