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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적 시민문화 어디서 오나/김호기 연세대 교수(전문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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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적 시민문화 어디서 오나/김호기 연세대 교수(전문가 진단)

입력
1997.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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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상실한 입시위주 학교교육/청소년범죄 유발이어 천민자본주의 부채질얼마전 일식집 주인을 납치해 살해하고 암매장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서울 강남의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부유층을 상대로 20대 초반 청년들이 금품을 노리고 저지른 범행으로 밝혀져 세상을 놀라게 했다. 또 생활기록부를 개조해 만든 어느 여교사의 「촌지기록부」가 우연히 공개되어 자식을 둔 부모들의 마음을 무척이나 우울하게 만들었다.

과거 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우리사회에서 왜 이런 일들이 오히려 증가하는 것일까.

그 원인 가운데 하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한 「천민적」 자본주의의 속성에 있다. 이는 많은 개인적, 사회적 활동이 무엇보다도 돈과 권력을 획득하는데 일차적인 목표가 있는 것을 말한다. 기업을 포함한 대다수 사회조직들이 권력과 결탁하여 보이지 않는 뒷거래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해 온 것이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압축적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형성된 이 천민 자본주의는 역설적인 「천민적」 시민문화를 형성해 왔다. 남이 보지 않는다고 길거리에 휴지를 버리고 아파트 가격의 하락이 걱정되어 쓰레기 매립장 건립을 무조건 반대하고 금품을 살포하더라도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의식과 행동으로부터 우리의 아이들은 과연 무엇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것일까. 학교에서 배운대로 사는 사람은 사회생활에서는 오히려 실패한다는 말은 이런 천민문화를 단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이기적인 천민문화를 강화시킨 주원인 가운데 하나는 입시위주의 교육체계다. 입시위주의 교육체계는 무엇보다도 학교교육을 학업성적 우수자만을 위한 교육으로 전락시키고 대다수 평범한 학생들을 그 교육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입시위주의 교육은 개선되기는커녕 고등학교에서 초등학교까지 그 여파가 확산되어 왔다. 어린이들조차 이제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시험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청소년들의 약물남용, 학교폭력, 집단 괴롭힘, 가출 등의 문제가 이제 초등학생들에까지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황폐한 교육현실은 정규교육만이 아니라 가정교육에도 그 책임이 있다. 가정이 일차적인 교육현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은 이 가정에서 굴절된 의식을 배우고 있다.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부모의 생각은 고액과외와 촌지라는 행동으로 나타나고, 경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유형 무형의 의식적 강요로부터 아이들은 이중적인 가치와 태도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다.

공공교육에서 배우게 되는 타인에 대한 관용 및 협동심과 사적영역에서 내면화하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주의라는 모순적인 가치의 사회화야말로 우리 교육의 현주소라 할 만하다.

이기적인 천민문화의 극복을 위해서 교육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의 아이들이 학교성적에만 매달리는 파리한 점수벌레가 되거나 학교교육에서 소외된 채 비뚤어진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지식의 축적만을 측정하는 출세지향적인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관심들을 학교교육을 통해 일깨우고 그에 적합한 전문 훈련의 습득을 위한 폭넓은 교육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교육개혁을 위해서는 사회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돈과 권력으로 타인의 삶을 침해할 수 없도록 인간을 존중하는 가치관을 확립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관행들을 공고히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기주의에 기반한 천민문화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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