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후 어설픈 동거 영원한 라이벌캄보디아 내전의 두 주역인 노로돔 라나리드(53) 제1총리와 훈센(46) 제2총리는 성장배경 및 경력이 서로 판이해 결합이 힘든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아들인 라나리드가 「왕자」라는 기득권을 갖고 온실에서 순탄히 자라온 반면, 「농민의 아들」 훈센은 정글에서 사선을 넘나드는 게릴라로 끈질긴 생명력을 키우는 등 두 사람은 애당초 물과 기름의 관계였다.
이러한 성장 배경은 두 사람의 외모와 평소 행동거지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프랑스 명문 액상 프로방스대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교단에도 섰던 라나리드는 서구식 사고방식이 몸에 배어 있다. 통통한 얼굴에 천진한 미소를 가진 그의 주변에는 프랑스 미국 등에서 유학한 해외파가 몰려있다. 자연 그의 곁에는 이상론적 분위기가 흐른다. 이때문에 다소 유약해 보인다는 지적이 따르기도 한다.
이에 반해 깡마른 체구에 투사 기질이 강한 훈센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이다. 킬링필드로 악명높은 폴포트 집권기 크메르 루주군 장교로 시작해 외무장관 부총리 등을 거치며 물리력에 의지한 힘을 키워 나갔다. 훈센이 이끄는 캄보디아 인민당(CCP)은 또 정보기관 등을 장악, 협박과 회유를 섞어가며 라나리드 지지세력을 잠식해갔다. 그는 특히 정글에서 익힌 마오쩌둥(모택동)의 게릴라 전술을 현실 정치에도 적용, 고비때마다 대결과 타협을 적절히 구사했다.
두 사람의 악연은 82년 라나리드가 훈센이 이끄는 친베트남 정권과 싸우면서 시작됐다. 이후 치열한 권력 다툼을 벌인 두 사람은 91년 파리평화협정을 맺어 내전종식을 선언한 뒤 93년 총선이후 어설픈 「동거」에 들어갔으나 훈센의 모험으로 마지막 승부를 가릴 운명에 처하게 됐다.<이종수 기자>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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