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에 난세를 바로 잡겠다고 나선 제자백가 중에서 공자는 남이 못가진 학문을 갖추고 있었다. 바로 역사학이다. 그가 지은 노나라 역사 「춘추」는 동양 역사학의 원조가 되었다. 비단 이 책만이 아니라 공자의 언행은 모두가 역사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의 뛰어난 역사의식이 동양을 대표하는 철인이 되게 한것이다.과거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올바르게 예측하고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 그래서 역사의식은 국가운명을 좌우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국가가 중흥하는 시대나 위대한 정치가 치고 역사를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 경우가 없다. 한국 현대사를 보더라도 역사교육이 강조될 때 나라가 활기차게 발전하였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의 역사교육은 거의 빈사상태에 빠져있다. 대학에서의 국사는 선택으로 밀려나고 중고등학교의 국사도 앞으로 선택 혹은 사회과 속에 흡수되어버릴 운명에 처하였다. 그동안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지탱해온 정신적 기둥이요, 미래의 험난한 세계화시대에 공동체를 묶어줄 유일한 정신적 자산인 역사를 밀어내고 역사문맹자를 키우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이 나라의 교육정책이다.
각종 국가고시에서도 국사는 점차로 설 자리를 잃고있다. 대학수능고사에서 국사배점은 10점도 되지않으며 사법고시에서는 선택에서조차 빠져있다. 국사연구인력도 한심한 상황이다. 지금 전국 대학교수 중에서 국사담당교수는 모두 28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독문학이나 불문학교수보다도 월등하게 적은 수이다. 국사연구와 국사교육여건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세계화를 부르짖으면 이 나라는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 이것이 일류국가로 나아가는 길인가.
정부당국의 무관심과는 정반대로 일반 시민의 역사의식은 최근 폭발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스스로 역사를 찾아나서는 시민들이 많다. 방송매체에서도 역사물이 큰 인기를 끌고, 역사서적은 불황을 모를 정도로 잘 나간다. 전문가들이 시민을 상대로 쉽고 재미있게 쓴 역사책도 적지 않다. 서양문화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자각과 애정이 살아나고 있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것은 건전한 역사의식 함양에 별로 도움이 되지않는 흥미위주의 역사물이 범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는 전문적 지식도 없이 상업성만을 고려하여 이것 저것 전문가의 글을 베껴서 내는 것도 적지않다. 역사드라마에서 아낙네가 궁궐과 사랑방을 드나들며 사사건건 정치에 간여하고 있는 모습도 보기에 민망하다. 또 일상적으로 화려한 비단옷을 휘감고 보석귀고리를 달고 있는 출연자의 복장도 사실과 다르다.
국가의 공교육에서는 밀려나고, 민간의 상업주의에 의해 붐을 이루는 역사바람은 문제가 있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21세기를 준비한다고,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누구나 말하면서도 21세기와 통일의 그림이 무엇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선을 향해서 온갖 지혜를 짜내고 있는 후보들이 미래의 그림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도 아직은 알수가 없다.
세계화시대, 사이버시대, 정보화시대가 되었다고 지나치게 흥분하는 것은 좋지않다. 사람이 살아가는 원칙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다. 아니 변해서도 안된다. 나라를 이끄는 것이나, 기업을 하는 것이나,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나 모두가 인문적인 가치를 떠나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감성이 있다. 그래서 그 감성을 키우는 인문학이 있는 것이고 인문학의 바탕에 역사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역사니 철학이니 문학이니 하는 인간 본연의 가치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상업주의가 전전하는 기술만능, 물질만능으로 치닫고 있다.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는 가치가 무너지고 물질이 발달할 때 오히려 국가와 사회라는 공동체가 무너진다. 그것이 동서고금의 역사다. 로마가 왜 망했는가. 가난해서, 혹은 기술이 낙후해서 망했는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걱정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가치의 붕괴와 공동체의 해체이다. 그러므로 공동체를 묶어세우는 역사의식이 지금처럼 긴급한 때가 없다. 여기에 답을 가지고 역사를 쓰자. 그리고 그 답을 가진 역사를 연구하고 배우고 가르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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