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달생 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기성자가 왕을 위해 투계를 길렀다. 열흘이 지나자 물었다. 『닭이 싸울 수 있겠는가?』 『아직 안 됩니다. 아직 교만하고 기운을 뽐내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열흘이 지나자 또 물었다. 『아직 안 됩니다. 아직 노려보고 기가 성합니다』 하였다. 열흘이 지나자 또 물었다. 『거의 되었습니다. 다른 닭이 비록 울어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바라보면 나무닭 같이, 정신이 응집되어 있습니다. 다른 닭이 감히 대항하지 못하고, 보고는 도망칩니다』
어떻게 언어 그것에 닿을 것인가. 언어가 만들어 내는 상황, 거기 이 세계의 어둠을, 또는 사랑… 그것을 담을 것인가.
나라는 존재는 거기 없으며, 그러면서 거기 있는 그런 상태.
사물의 은유가 「나」의 은유가 되며 그것이 「우리」의 은유가 되는 상태… 너무 희망이 큰 것인가. 유토피아는 없음으로 있는 것인가… 오늘의 별처럼… 사랑이 사랑으로 어두워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의 무수한 골목길, 건널목에서.<시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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