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의 계절이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대개 반딧불에 대한 향수가 있다.그러나 지금 반딧불을 찾아 보기는 쉽지 않다. 반딧불이가 살아 남을 만한 환경이 우리 국토위에 별로 살아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딧불이의 먹이 고리에 다슬기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슬기는 가재나 마찬가지로 산골짝 맑은 시냇물에서 돌에 의지해 살아간다. 물이 맑지 않으면 다슬기는 살지 못하고, 다슬기가 없는 곳에서는 반딧불이도 살기 어렵다.
반딧불의 계절이면서도 반딧불을 찾아 보기가 쉽지 않은 현실은 우리의 파괴된 생태계 질서를 말해준다. 반딧불만도 아닐 것이다. 인간의 질서, 사회의 질서, 정치의 질서가 모두 이러한 반딧불이의 운명과 한 줄에 서 있다.
『반딧불과 가재가 우리가 채택한 교과서』라고 주장하는 한 「학교 안내」는 엉뚱하고, 그래서 신선하다. 이 「학교」에서는 반딧불과 가재를 실제로 보고, 잡고, 더불어 놀 수 있다는 것이 자랑이다. 하늘과 땅, 해와 달, 저녁 놀과 동트는 새벽, 나비와 개구리, 번데기와 지렁이, 꽃과 나무들…. 이런 모든 자연들이 「교과서」목록에 들어있다. 이른바 자연학교, 어렵게는 대안교육이라고 설명되기도 하는, 어느 실험적인 현장에 대한 이야기다.
교과서는 많지만 이 「학교」에는 없는 것도 많다. 시멘트 건물이 없고, 음료수 자판기도 없고, 상수도·전기도 없고, 수세식 화장실도 없다. 진짜로 없는 것은 교과과정이다. 자연 그대로의 원형을 만져보게 하고, 맛보게 하고, 냄새맡게 하고, 느끼게 하자는 것이 이념이라면 이념이다. 특별히 입학자격이 없는 학생들도 있는데, 이를테면, 수세식이 아니면 볼 일을 못보는 아이들, 부모와 떨어져서 친구들과 함께 잠잘 수 없는 아이들, 외국산 옷과 신발과 학용품과 음료를 즐기는 아이들이다. 이 「학교」교장 말로는 이 곳은 한마디로 「어린이들의 방목장」이다.
대안교육은 인도의 간디가 말한 「기본교육(Basic Education)」, 덴마크의 그룬트비가 주창한 「생활학교(Skolen for Livet)」와 정신이 같다고 한다. 모두 100년의 연륜을 가진 이념들이다. 아파트 단지의 규격화한 콘크리트 주거에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자연체험을 이런 대안교육을 통해서라도 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자신이 학부모이기도 한 교장의 설명이다. 자연체험은 인간의 기본을 학습하는 것이다. 이런 인간 기본의 결여가 「청소년문제」의 본질이다.
일본 고베(신호)의 어린이 살해범인 14세 중학생은 잘라 내버린 피살시신의 입에 물린 「편지」에 이런 말을 썼다고 한다. 『…살인을 하고 싶어 견딜 수 없다. 의무교육이 나를 변하게 했다. 학교에 복수하겠다』. 일본은 지금 이 「소년살인」을 두고 온 나라가 들썩이는 중이다.
들썩이기는 우리나라도 못지 않다. 이곳의 주제는 학교폭력이다. 중고교에서 초등학교까지 번지고 있다는 학교폭력은 단순폭력이나 금품갈취 등 탈선 차원을 넘어 집단화―조직화로 범죄의 양상을 보인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정부가 정면으로 대응하고 나서 관계장관회의, 긴급당정회의, 내무부 대책발표, 교육청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학생폭력사범으로 올들어 검거된 청소년이 2만5,000명, 구속자도 6,000명을 훨씬 넘는다. 이들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의 범죄단체조직 등의 혐의가 적용되는 등 중벌이 예고된다. 「학교폭력 담당 검사제」 「전담수사반」에서 전국 4,300여 중·고교를 담당하는 「학교담당 경찰관」 1만여명과 「1일 1회이상 학교방문」 등의 대책이 자못 살벌한 느낌마저 준다.
생각할 일은 법과 형벌의 대응이 진정한 해결책일 수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학교폭력에의 대응은 보다 교육적이고 보다 근본적인 시각의 접근을 필요로 한다.
어느 대안학교에 왔던 고2 남학생이 풀바닥에 드러누워 소리쳤다는 말―『하늘에 별이 이렇게 많은 것을 처음 봤어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학교교육의 틀에 박혀 진짜 세상, 진짜 놀이를 모르고 살아가는 전자게임세대의 철저한 소외를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반딧불 학교의 꿈」을 말하는 교장과 함께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심의실장>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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