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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의 까닭(김성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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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의 까닭(김성우 에세이)

입력
1997.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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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여당쪽보다는 야당인 국민회의가 먼저 국회의 대표연설에서 언급함으로써 논의가 표면화되었다. 국민회의는 당사자들의 반성과 사과를 전제로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다는 자세다. 신한국당은 당의 입장표명이 아직 없는 채 얼마전 대통령후보경선 출마예정자들의 TV토론과정에서 개별적인 태도가 드러났다. 일부 신중론도 있었지만 대체로 사면에 긍정적인 반응들이었다.여야 모두 연말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득표 전략의 일환으로 이 문제를 이용하려는 측면이 강하지만, 사면에 찬성하는 측의 일반적인 논거는 국력의 통합과 국민 화합을 위해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다. 현 정부로서는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해야 할 까닭이 따로 또 있다.

한보 비리와 김현철씨 구속에 이어 92년 대통령선거 자금의 공개여부가 정권을 흔들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으로서는 대선자금을 공개해도 탈이요 안해도 탈이다. 어느 누구도 묘책을 갖고 있지 않다. 일부에서는 김대통령이 솔직히 고백하고 사과하면 국민들이 용서해 줄 것이라지만 그런 꾐수에 넘어갈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지금에 와서 밝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버틴다면 언젠가는 국민들이 대신 계산해 줄 것이다. 난감하게 되었다.

대선자금 문제는 한보사건에 물려 불거져 나온 것 같지만 실은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과 함께 제기되었던 것이다. 역사적 재판의 서슬에 일시 잠복되어 왔을 뿐이요 현정권의 임기내에 반드시 폭발이 예견되었던 시한폭탄이었다. 그만큼 이것은 현 정권의 멍에가 되어 왔다.

이것이 왜 멍에가 되었는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처음에 구속된 것은 비자금 때문이었다. 이로 인한 정국혼란의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 김대통령은 5·18특별법의 제정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구속되고 이어 그의 비자금이 들추어졌다. 비자금을 철저히 캠으로써 궂은 돈을 한푼도 안 받기로 한 현 정부의 도덕성을 부각시키자는 것이었고 5·18특별법이 위헌시비에 휘말리자 비자금의 부도덕성을 내세워 국민감정을 격분시키는데 성공했다. 결국 두 전직대통령 구속의 명분은 「역사 바로 세우기」에 있었지만 그 도구는 비자금이었다.

이 비자금과 92년 대선자금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재벌로부터 받은 부정한 돈이기는 마찬가지다. 대선자금 모금이 당시로서는 관행이었다면 대통령의 비자금도 당시로서는 묵인된 것이다. 비자금이 대가성이 있는 것이었다면 대선자금도 당선을 전제로 한 사전 수회로 「포괄적 뇌물」이 아닐 수 없다. 통치자금으로 모았으면 왜 거액을 남겨 가지고 나왔느냐가 지탄받아야 마땅하지만 대선자금 또한 그 내역을 밝히지 않고 있어 쓰고 남은 돈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대선자금의 공개 요구에 대해 여권에서는 여건 야건 아무도 그때의 선거자금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으니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내일을 생각하자고 말한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당시 정치인은 누구도 정치자금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었으니 비자금도 남긴 돈을 국고에 환수하는 선에서 미래지향적으로 타결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만하다.

대선자금의 멍에는 바로 이 비자금이 씌운 것이다. 비자금이 문제가 되기 이전에는 아무도 대선자금을 문제삼지 않았다. 비자금이 부도덕했기 때문에 대선자금도 부도덕하다. 전 정권의 부도덕성을 강조하다보니 현 정권 탄생과정의 부도덕성이 함께 노출되어 버렸다. 비자금이 사법처리 대상이 되었으면 대선자금도 마찬가지라야 한다.

대선자금의 족쇄는 결국 김대통령의 자승자박이다. 자도자해할 수 밖에 없다. 그 길은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사면일 수 있다. 이들을 사면하는 것은 자신을 사면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 사면으로 김대통령이 대선자금의 굴레에서 당장 풀려나오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금방 용서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장차 자신이 사면될 소지는 자신이 만드는 것이 된다. 사면을 다음 정권에 넘겨서는 그 기회를 잃는다. 현 정권이 전·노 두 전직대통령을 사면해야 한다면 이런 까닭에서다.<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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