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처 원전 고려 알고도 “쉬쉬”/26일 기상청서 “포항앞바다” 첫 발표/27일 자원연 “경주 남동쪽 내륙” 확인/과기처선 통보 받고도 공개 안해지난달 26일 포항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의 진앙지가 기상청의 발표와 달리 지진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양산단층대와 인접한 내륙이라는 사실은 한마디로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 지역에는 고리 월성 등 원자력발전소가 밀집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원연구소가 정확한 진앙지를 보고했는데도 과학기술처가 기상청 발표를 번복하지 않고 은폐한 이유도 원전에 대한 「고려」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과기처가 평지풍파를 두려워해서 직무를 유기한 것이다. 기상청은 2일 하오 한국일보 3일자 지방판 1면기사를 본 뒤 당초의 진앙지가 잘못됐다는 자료를 긴급발표하고 오류를 시인했다.
지진의 진앙지가 경주 남동쪽의 양산단층인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국내 원자력 정책이 대대적으로 수정돼야 할 위기에 놓였다. 단층의 활성화여부는 지진발생여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활성화단층에서 지진이 일어날 경우 원전은 바로 화약고가 된다는 설명이다.
양산단층대가 활성으로 입증될 경우 인근에 위치한 원전의 안전성은 크게 위협받게돼 원전의 안전대책을 처음부터 다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현재 고리와 월성에 추가로 건설하고 있는 3기의 원전에 대한 건설계획자체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원전은 일단 사고가 날 경우 파괴력이 어느 천재지변보다 크다는 점에서 부지선정에서 부터 건설에 이르기까지 정밀한 지질조사를 하도록 규정돼 있다. 국내 원자력법에 따르면 원전을 활성단층과 인접한 지역에는 건설할 수 없다. 하지만 과기처는 지금까지 양산단층이 비활성이라는 점만을 앞세워 이 인근에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강행, 이미 5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있다.
사실 양산단층은 83년부터 활성여부를 놓고 학계가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온 지역이다. 또 삼국유사와 고려사 조선실록 등에 10여차례 경주 포항지역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기록도 있어 주목받아왔다.
▷진앙지 번복경위◁
기상청은 지난달 26일 『포항 남동쪽 94㎞해상(북위 37.8도, 동경 129.7도)에서 규모 4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양산단층의 활성여부조사를 벌이고 있는 한국자원연구소는 지난달 27일께 기상청보다 정밀한 측정기기를 동원, 진앙지를 조사한 결과 경주 남동쪽 방향인 것으로 확인했다. 자원연구소 관계자는 『양산단층이 진앙지라는 결과를 확인하고 즉시 과기처와 기상청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과기처는 이에대해 『한국자원연구소로부터 진앙지에 대한 통보를 받았으나 정밀검토 중이었을 뿐 은폐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선년규 기자>선년규>
◎양산단층대/지각변동 부산∼양산∼영해 지표면 어긋나
단층대는 융기 등의 지각변동으로 한 쪽 지면은 가라앉고 한 쪽 지면은 솟아올라 지표면이 서로 어긋난 지층을 말한다. 양산단층대는 부산에서 울산 경주 포항 영해까지 뻗어있는 단층대를 말하는 데 단층대 중간지점에 있는 경남 양산군의 지명을 따 이름을 붙였다.
양산단층대의 경우 그동안 지진발생가능성이 없는 비활성층으로 조사돼 인근 월성 고리 등에 5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집중적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양산단층대는 그동안 지진발생가능성이 높은 활성단층대라는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왔으며 81, 82년에도 포항 울진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한 바있다.<전국제 기자>전국제>
◎전문가 의견/진앙지조차 제대로 분석못해/원전 내진·활성단층여부 밝혀야
지진전문가들은 6·26포항지진의 진앙지가 양산단층대라는 점에 대해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시했다. 특히 기상청이 원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고려, 의도적으로 진앙지를 은폐했다는 사실에 대해 강도높게 비난했다.
◆이기화 서울대 지질학과 교수=포항지진은 규모 4로 강진은 아니지만 활성단층인 양산단층대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그곳에는 고리 및 월성원전 등이 밀집해 있어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동해안의 원전들은 양산단층이 활성단층이 아니라는 조건하에 내진설계가 돼있다. 지진활성조짐이 있으면 활성단층을 전제로 설계해야하는데 충분한 연구없이 원전을 건설한 셈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원전의 내진설계기준을 넘는 불의의 대형지진에 대비, 현재의 기준이 합당한가를 전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한국자원연구소는 활성단층이 아니라는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지만 외국학자들은 이미 양산단층이 활성이라는 학술발표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한국자원연구소는 명예를 걸고 양산단층이 활성단층인지 아닌지를 이 기회에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활성단층이라고 밝혀지면 정부는 원전이전까지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김정환 서울대 지질학과 교수=전문인력과 장비를 갖춘 기상청에서 국민의 안위와 직결되는 지진의 진앙지하나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기상청은 지진이 발생하면 진앙지위치나 지진규모 등 기본사항을 신속히 파악, 국민들에게 알려야하는 책임을 갖고 있다. 특히 이번 지진은 그동안 활성여부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았던 양산단층대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국내 지진경보 체계의 문제점을 노출한 것이다. 70년대 원전이 처음 건설됐을때 국내의 지진의 최대강도가 규모 7.0이내로 상정하고 내진설계를 해왔다. 그러나 당시에는 국내지진에 관한 자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돌발적인 변수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번 지진을 계기로 댐이나 원자력발전소 등 대형건축물의 내진설계기준을 정밀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김소구 한양대 지진연구소장=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장비나 인력으로는 직접적인 지진발생여부를 판단하기 힘들다. 따라서 외국의 지진 전문인력과 장비를 도입, 5∼10년정도 장기간 분석해야 한다. 만약 양산단층대가 활성단층으로 밝혀지고 이곳에서 강진이 발생한다면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못지 않은 대재난이 우려된다. 만약 지진으로 원전이 붕괴되면 방사능이 누출돼 다음세대까지 방사능 오염에 시달리는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할 것이다. 현재로서 최선의 대책은 정확한 지진자료를 수집해 발전소의 내진설계를 재검토하는 일이다. 아직까지는 국내 전문인력 및 장비가 부족한 실정인데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에대한 집중투자가 있어야 한다.<박승용·홍덕기 기자>박승용·홍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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