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벽 있었던가 형님되고 아우되고/들쭉술 건배 분위기 고조/노래와 춤 한마음 3시간지난 30일 하오 7시부터 베이징(북경)에 있는 유경식당은 「통일특구」로 변했다. 참석자들은 공식회의의 격식을 벗어나 흉금을 털어놓고 의기투합했다. 말씨만 약간 다를 뿐, 50여년 분단이 빚은 이질감은 전혀 없었다.
대결의식이나 상호불신, 경계감은 이날 밤에 관한 한 과거의 일이었다. 「한반도 평화와 화합을 위한 모임」 첫날 회의일정이 끝난 뒤 북한측이 남측 참석자들을 초청해 가진 만찬은 이처럼 시종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만찬은 의례적 인사말을 생략하고 북한측이 평양에서 특별히 준비해 온 들쭉술 건배로 시작됐다. 95년 1차 회의 때도 참가했던 김경남 북한 사회과학원 통일문제연구소 부소장은 『들쭉술은 남쪽에 계신 분들이 제일 좋아하는 술』이라며 『통일의 술이라고 이름 붙이자』고 제안, 큰 박수를 받았다.
참석자들은 격의 없이 자리를 잡고 앉아 가족관계 등 일상사를 화제로 삼았다. 40대 전후의 젊은 참석자들은 금방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돼 형님은 동생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놓았다. 『형님이 주는 잔이니 받아라』고 술을 권하면 「동생」은 술을 못 해도 꼼짝없이 40도나 되는 들쭉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북측의 한 참석자는 『폭주(폭탄주)나 한잔 하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폭탄주에 이골이 난 남측 인사들이 『내일 회의를 위해 오늘은 참자』고 자제, 폭탄주 대결은 남측이 주최하는 다음날 만찬 자리로 연기됐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노래와 춤이 이어졌다. 사회는 90년 남북학생회담 북측 준비위원으로 「통일의 꽃」 임수경씨를 안내했던 리금철 북한 사회과학원 연구사가 선점했다. 그는 『이번 회의가 조국 통일에 이바지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북한 대표단의 마음을 담아 먼저 한 곡 부르겠다』며 「기러기떼 나르네」를 열창했다. 이 노래는 고향에 가고 싶은 애절한 심정을 담은 것으로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에 나온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남측 참석자인 황병기(이화여대 국악과) 교수와 부인 한말숙씨는 「통일의 길」을 함께 불렀다. 「우리 겨레 대대로 오고 가는 길, 땅이 높아 오가지 못하는가」로 시작되는 이 곡은 황교수가 90년 평양에서 열린 범민족 통일음악회에 참석했을 때 북측 음악인 성동춘씨와 함께 작곡했던 노래.
회의 참석자 중 홍일점인 안인해(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사랑할거야」를 불러 『남쪽에서 이미자가 온 줄 알았다』는 평(리금철)을 들었고, 회의 공동 사회자인 남측 단장 구영록(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와 북측 박동근 조국통일연구원 실장은 「아리랑」을 함께 불러 갈채를 받았다.
한국일보 특별취재반은 어깨동무 하고 「눈물 젖은 두만강」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열창, 앙코르까지 받고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합창했다.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자 참석자들은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유경식당 여종업원이 합창하는 북한 대중가요 「휘파람」에 맞춰 덩실덩실 춤도 추었다. 이두식(홍익대 교수) 한국 미술협회 이사장은 『정말로 오기를 잘했다』면서 『평생 기억에 남는 밤이 될 것』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오 10시께 아쉬움 속에 만찬은 끝났다. 참석자들은 한 버스에 타고 숙소로 향했는데 먼저 북측 참석자들이 숙소인 북한대사관 앞에서 내렸다. 그들은 버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베이징=특별취재반>베이징=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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