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정직성과 ‘불구의 진실’김상미의 시집 「검은, 소나기떼」는 과격한 고백으로 가득찬 시집이다. 서정시는 일반적으로 「시인―화자」의 주관적 동일성에 근거한 고백의 형식을 띠고 있기 마련이다. 이 형식이 더 이상 미학적 충격을 주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현대적 일상의 복합성과 경험의 모순을 배제하는 평면적인 언술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미 시 역시 기본적으로는 1인칭 화자의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시인은 시가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자기존재를 둘러싼 온갖 기만과 풍문과 싸우는 것이라는 점을 시의 아픈 몸으로 보여준다. 가령 「넋두리」라는 시에서 시인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쓰는 시는 시가 아니다/ 넋두리이다/ 겹겹으로 타인들의 시선이 둘러싸고 있는/ 포장 꾸러미/ 캄캄한 밤이 얼결에 바지를 내리고 누는 똥이다」라고 말한다. 이 시집에서 시적 화자가 타자들의 공간에서 받은 모욕들은 넋두리의 형식으로 해소되지 않고 타락한 세계 안에서의 자기존재의 불길한 정체성에 대한 뼈아픈 질문들로 언어화된다. 그것이 이 시인의 시적 정직성이다.
그 정직성은 시인의 실존적 조건으로서의 여성성에 대한 탐문과도 연관된다. 「나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구멍 뚫린 죄의 얼룩만 남은 나무관 곁에서 이제 홀로, 홀로 노래해야 합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라고 노래하는 「파랑새」 같은 작품은 여성주의적 상상력과 미학의 한 수준을 드러낸다. 이 시집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관능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 역시 여성적인 상상력과 관련된다. 이 시집의 마지막 시 「불구의 진실」은 화자의 실존적 진정성에 관한 아이러니를 난폭하게 보여준다. 화자는 「무자비한 타인들의 손에」 불구가 되지 않기 위해 「거짓말로 진실을 쏴 죽였어」라고 고백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런 고백이야말로 얼마나 시적 진실에 육박하고 있는 지를 안다. 우리 시대는 결코 「진실」에 감동하지 못하고 이런 「불구의 진실」에 감동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타자들의 지옥 속에서 살아가는 이 불구의 시대에 대응하는 「불구의 진실」이다.<문학평론가·서울예전 교수>문학평론가·서울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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