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에 담긴 600년의 비밀/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어른 4∼5명 팔뻗어 감싸야되는 풍채/그러나 아직까지 이 차맛을 본 사람은 없다경남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 다원마을(다원동) 다원 손씨 재실에 있는 차나무 세그루는 이곳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손씨들이 대대손손 600년을 키워온,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다.
나무 나이 600년! 동네어귀 느티나무나 향나무도 600년이 되면 동네어른 모시듯 마을사람들로부터 숭앙받는데 600년된 차나무라니!
재실안 혜산서원 마당, 다원서당앞 연못옆, 재실 입구 신도비 옆에서 각각 초여름 두물째 찻잎을 피워내고 있는 이 차나무들은 약 2m의 키에 굵기가 3∼4㎝나 되는 옆가지가 사방으로 죽죽 뻗어 있다. 어른 4∼5명이 팔을 이어야 온전히 감쌀 수 있는, 차나무로서는 당당하기 그지없는 풍채다.
다원 손씨는 안동 일직 손씨 계열이다. 조선 태종(1400∼1418년)연간에 일직 손씨 시조인 정평공 손홍량의 증손자 관이 지금의 경남 밀양시 용활동으로 세거를 옮겨 온다. 옮길 때 안동 일직면 송현리 일직 손씨 재실에 자라고 있던 차나무 중에서 세그루를 옮겨 심었다. 그리고 관의 후손 호가 지금의 자리, 4,000평 대지에 한옥 13채를 짓고 터전을 옮겼다. 420년 전이다. 물론 차나무도 옮겨 심었다.
일직 손씨는 원래 순씨였다. 정평공은 고려 충선왕 기유년(서기 1309년)에 벼슬에 올라 충숙 충혜 두 왕을 모시고 큰 공을 세운다. 충혜왕을 이은 공민왕이 이를 치하해 성을 내리면서 8대 현종의 이름자가 순으로 발음이 같다고 해 소리가 비슷한 손씨로 사성을 하게 된다. 서기 1379년 정평공이 별세하자 후손들은 일직 손씨의 시조로 모시고 일직면 송현리에 재실을 세운뒤 「타향서원」이라고 이름했다.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때는 차문화도 가장 융성했던 때였다. 후손들이 차나무를 옮겨 갈 만큼 차나무를 심었던 것이나 서원안에 있던 우물이름도 「다정」이라 한 것으로 미뤄 정평공이 무척이나 차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 지금 밀양 재실을 맡아 관리하고 있는 27대 종손 태철(68)씨의 얘기다. 일직에서 밀양으로 옮겨간 후손들이 본관을 「차마을」을 뜻하는 「다원」으로 한 것도 정평공과 차의 관계가 여간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손씨 문중에서는 이 차나무들을 「타나무」라 부른다. 「다」자를 왜 「타」로 발음하는가 했더니 일직 타향서원에서 가져 왔다해서 「타」로 부른다는 설명이었다. 시조 정평공을 모시는 타향서원에 차나무를 심은 것이 600년이 지났으니 손씨문중의 말이 맞으면 이 차나무들은 600년을 넘었다.
지난 89년 우연히 성씨의 본관에 「다」자가 들어 있는 것을 알고 『혹시 차와 무슨 관계가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 밀양을 찾은 길에 만난 태철씨의 부친 특수(당시 81세·작고)씨는 이 차나무에 대해 『정평공이 집안에서 키우던 것을 재실에 옮긴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중국에 살던 선조가 고려로 옮겨 오면서 가져 온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고 했다. 600년도 훨씬 더 됐을 것이라는 뜻이 숨어 있었다.
아무튼 차나무 수령이 600년이라면 세계적이다. 차나무의 원산지인 중국 윈난(원남)성 서쌍판납의 「대차수」가 1,700살, 「차왕수」가 600살이다. 이 차나무들을 보기위해 세계 차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다도를 자신들의 고유문화로 포장해 온 일본에서도 차나무가 200년 정도만 됐어도 대단한 대접을 받는다. 윈난성 차나무는 키 10m가 넘는 대엽종인 반면 밀양 것은 키가 작은 소엽종이다. 소엽종이라도 자생한 것이 아니고 후손들이 바통을 받듯 대대로 키워 온 것이 600년이라면 보물중 보물일 터이다.
식물학계 원로로 문화재위원인 이창복 박사는 『밀양 차나무 수령이 600년이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일 것』이라며 『현지 조사에서 사실로 밝혀지면 이른 시일내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귀한 나무인데도 정작 이 차나무에서 딴 찻잎으로 만든 차맛을 본 사람은 없다. 조상의 숨결과 손길이 아직 살아있어서일까. 정평공의 후손들은 차나무를 보존하는데 정성을 들일 뿐 차맛을 즐기는 것은 저어하는 듯 했다.<김대성 편집위원>김대성>
◎일직 손씨 재실은 폐허가 되어 차나무도 사라져
안동 일직면의 차나무는 재실이 페허가 되면서 없어져 버렸다. 5년전 일직에 있는 사당을 찾았을 때 이곳에 살던 손정배(59)씨는 조선말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리면서 퇴락하기 시작해 차나무도 언제 없어졌는지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다. 식물학자들은 안동지방은 겨울 추위때문에 햇볕이 잘드는 곳에 자리를 잡아 정성들여 가꾼다면 모를까, 차나무를 키우기 힘든 곳이라며 정평공의 차 가꾸기는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알기쉬운 차입문/정성과 청결함으로 ‘다도의 완성’ 우려낸다
음식은 손맛과 정성이라고 했다. 차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물과 차가 있으면, 이제 여러분의 손맛과 정성이 차맛을 결정한다. 손맛을 경험의 소산이라고 하면, 차를 처음 시작하는 여러분들이 선택할 여지는 정성밖에 없다. 그래서 차맛을 내는 첫번째 비결은 「정성껏 차를 우린다」이다. 쉽고도 간결한 비결이지만, 이 「정성껏」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경계는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극히 내면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 내면의 부분을 외면의 행동으로 옮겨 내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때, 차생활의 바탕이 생기고 나아가 차예절이 완성된다.
우리 선조들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손님을 맞이하고 제사를 모실 때면 먼저 손을 씻었다. 재실이나 사랑채 앞에 놓인 홈이 패인 작은 돌인 호박소가 바로 손을 씻던 자리이다. 술을 마시는 예절을 배우는 향음주례의 첫머리에 바로 이 손을 씻는 의식이 있다. 주인이 물을 부어주고 손님은 그 물로 손을 씻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정갈함과 정겨움이 넘친다. 삶을 너그럽게 끌어 안는 술을 마실때도 그러할 진데, 늘 깨어있는 삶을 살게하는 차를 마실때는 어떠 했을까. 오늘날 그 문화는 음식점이나 비행기를 탈 때 주는 물수건으로 변형되어 남아 있다. 외출을 하고 돌아 왔을 때나 식사 전에 손을 씻는다는 평범한 건강수칙으로 남아 있다. 이렇듯 평범한 속에 건강한 삶을 이루는 바탕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잊고 지낸다.
손을 씻는 것은 부정한 것을 씻어 내어 탈나는 것을 막아주는 준비의식이라 하겠다. 여기서 다시 한번 초의 스님이 「차의 위생」이라 하여, 차를 만들때 정성을 다하고, 보관할 때 건조하게, 그리고 차를 우려낼때 청결하게 하는 것이 차도의 완성이라고 한 점에 주목을 해야 할 것이다. 차생활을 어떻게 시작하여야 할지를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차 한잔에는 건강한 삶의 바탕인 청결함이 담겨야 한다.<박희준 향기를 찾는 사람들 대표>박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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