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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필력과 감각… 문단의 주류(한국의 30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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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필력과 감각… 문단의 주류(한국의 30대:24)

입력
1997.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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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감성소설로 80년대를 노래/베스트셀러·문학상 단골손님/상당수가 ‘늦깎이 여성작가’ 특징/그러나 문학이 소비상품 전락/경외심 사라진 세태에 고민도30대 작가들이 왕성한 필력과 참신한 감각으로 문단을 압도하고 있다. 외견상으로도 이들은 시중의 대형 서점에서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순위나 각종 문학상 수상자 명단에서 40∼50대 중견작가들을 제치고 다수파가 됐다. 전업작가를 표방한 30대 문인들은 기성작가들이 천착했던 이데올로기 문제에서 과감히 벗어나 세련된 필치로 주독자층인 20∼30대의 감각을 충족시키고 있다. 문단에서는 더 이상 30대를 「신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주요 계간문학지의 편집진도 30대로 메워지고 있다. 「창작과 비평(창비)」 「문학과 지성(문지)」은 물론이고 「문학동네」 「문학사상」 「한국문학」 「현대문학」 등 대표적인 문학잡지들은 발빠르게 30대 평론가들로 세대교체를 시도하고 있다. 4·19세대 비평가 김병익(59)씨는 『문지를 만들때 동인들은 30대 후반이었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30대 후진들에게 길을 터 줄 때가 됐다』고 말했다.

30대 작가들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시작된 80년대 초·중반에 대학을 다니며 직·간접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세례」를 받고 등단했다는 공통의 이력을 지녔다. 문학평론가 유보선(35)씨는 『80년대의 충격은 30대 작가들이 영원히 지고 가야할 멍에』라며 『이런 점에서 30대는 분단이라는 상처를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기성세대나 코스모폴리탄·하루키적인 20대 작가들과 확연히 구분된다』고 말했다.

이들이 80년대를 이야기하는 주요 장르는 소설이다. 이념이 살아있던 80년대와 달리 감성이 판치는 90년대에는 시의 설득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최영미(32)씨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제외하고 최근들어 대중적으로 성공한 시는 별로 없다. 「염소를 모는 여자」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가 전경린(35)씨는 『90년대는 시를 읽는 것보다 광고 카피를 보면서 더 감동을 느끼는 세상이 됐다』며 『시가 살자면 좀 더 고급화한 감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30대 작가들이 소설을 통해 80년대를 해석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은 크게 두가지이다. 우선 80년대를 추억하며 지금의 나를 반추하는 소설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공지영(34)씨의 「고등어」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학생운동을 거쳐 80년대 노동운동에 투신한 남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렸다. 주인공 명우와 은림은 유부남 유부녀. 은림은 명우의 후배인 건섭의 아내. 언뜻 보기에는 불륜 애정소설의 인물 설정이다. 작가는 불륜이라는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운동을 위해서, 변혁이라는 대의 때문에 헤어져야 했던 이들의 80년대 사랑을 비극적으로 이야기했다. 지난해 호주 이민 체험을 담은 「먼길」로 한국일보문학상을 탄 소설가 김인숙(34)씨도 마찬가지. 김씨는 80년대 사회모순을 파고든 리얼리즘 소설로 필명을 날리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80년대 후일담류 소설들도 최근들어 사소설에 의해 대체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김형경(37)씨의 「세월」이나 신경숙(34)씨의 「외딴방」과 같이 80년대라는 멍에를 아예 벗어버리거나, 뛰어넘으려는 시도들이다. 이들 소설의 특징은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를 비판하면서 개인의 성장, 결혼과 이혼의 문제에 천착하는 것.

문학평론가 장은수(30)씨는 『80년대까지는 시대적인 문제가 주류를 이뤘으나 90년대 들어서는 내면화한 소설, 즉 작가가 주인공으로 설정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게 주류를 이루고 있다』며 『이런 경향도 모두 암울했던 80년대를 다른 차원에서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이한 점은 이들 중 상당수가 30대 중반에 등단한 늦깎이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자녀가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까지 가정에 묶여있다가 뒤늦게 문학적 욕구를 활화산처럼 쏟아내고 있다. 문학평론가 정홍수(34)씨는 『작은 담론이 주목받는 요즘, 남성중심의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자리에서 그 권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여성 작가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김미현(32·여)씨는 이를 두고 「문학의 여성화」라고 표현했다. 김씨는 『80년대가 「광장의 문학」이었다면, 90년대는 「밀실 문학」, 즉 주변부에 맴돌던 문학이 복원되는 과도기적 상황』이라고 말했다.

「나비의 꿈」 「1995년 나비의 봄」 등 나비 시리즈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소설가 차현숙(34)씨는 『70년대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80년대는 이념에 찌들어서 여자들이 할말을 다할 형편이 못됐다』며 『흔들리는 배처럼 자아를 잃어버린 여성의 현실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밖에 은희경(36) 윤효(32) 박자경(34)씨 등이 요즘 주목받는 여성 작가들이다.

사실 30대 여성작가의 대두는 과거 분단시대의 이념적 갈등이나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다루었던 남성 작가들의 목소리가 최근들어 실종된 것과 대조를 이룬다.

30대 작가들은 「80년대를 사는 90년대 문인들」이지만 컴퓨터·사이버 문화 등 신세대들의 공격적인 취향도 적극적으로 흡수한다. 키보드 세대인 것이다. 펜과 원고지 대신 컴퓨터 키보드에 훨씬 익숙해져 있기도 하다. 창작활동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독자의 역할에서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하이텔 통신은 최근 주인석(34) 이순원(39) 윤대녕(35)씨 등 30대 작가의 소설을 연재해왔는데, 독자들은 그때 그때 소설에 대한 제언, 비판 등을 역시 컴퓨터로 올린다. 작가의 글을 독자가 읽기만 하던 일방통행식 문학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가 서로 대화하는 양방통행식 문학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아직 30대 작가 중 돋보이는 스타가 없는 건 왜일까. 최근 출판사들은 베스트셀러 작가들을 교보문고 등에서 열린 문인 사인회에 내보냈으나 상당수가 사인펜 뚜껑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행사를 마쳐야했다. 30대의 한 문인은 『문학이 문학자체로 존재하지 못하고 하나의 소비상품으로 전락한 세태에서는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나기 힘들다』며 『작가가 거대 문화산업에 언어를 제공하는 일종의 하청업자가 되고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인이 지식인이자 정신문화의 리더라는 통념이 문단 안팎에서 깨지고 있는 것이다.<이동준 기자>

◎30대 작가의 산실 문학동네

문학동네는 90년대 들어 30대 문인들의 주요 활동무대로 꼽히는 출판사중 하나이다. 신경숙(34) 은희경(36) 전경린(35) 윤대녕(35) 이순원(39) 차현숙(34) 구효서(39) 김이태(32) 권여선(34)씨 등 주목받는 30대 작가 대부분이 이 출판사의 계간지 「문학동네」를 통해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신경숙씨는 85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후 문학동네를 통해 「깊은 슬픔」 「외딴 방」 등을 선보이면서 90년대 대표적인 작가 반열에 올랐다. 특히 「외딴 방」은 문학적 평가는 물론, 50여만부 이상이 팔려 대중적 성공도 거뒀다. 또 문단에서 「90년대의 신데렐라」로 통하는 은희경씨는 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한 후 그 해 문학동네에 장편소설 「새의 선물」, 올해 창작집 「타인에게 말걸기」 등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문학동네의 특징은 한마디로 젊음이다. 93년 12월 평론가 남진우(37) 황종현(37) 서영채(36) 유보선(35), 시인 이문재(38)씨 등 30대 문인들이 기존의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열린 문학공간을 펼치기 위해서 창간했다.<이동준 기자>

◎인터뷰/33살 나이에 전업작가 변신 성석제씨/“책을 놓지않는 30대가 있는한 우리 문학의 미래는 밝습니다”

그가 전업작가로 변신한 것은 6년간 근무하던 대기업 홍보실을 그만두던 93년. 33살의 나이였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성석제(37)씨는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얘기들은 남들 역시 인정해줄 것이라는 자신감』때문이라고 변신의 변을 밝혔다.

86년 월간 문학사상에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시집 「낯선 길에 묻다」, 소설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왕을 찾아서」 「재미나는 인생」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그는 자신의 얘기를 하면서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80년대는 독서의 풍토도 엄격했습니다. 어려운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최인훈씨이나 이문열씨의 초중기 소설들, 다분히 이데올로기 지향적인 작품들이 지금 30대들에게 많이 읽혀졌죠. 그러나 시대는 변해 90년대 문학은 그야말로 대중지향적이고 상업성 짙은 방향으로 급선회했습니다』.

성씨는 이같은 문학풍토와 독자들의 정서를 「안정된 책읽기 구도」라고 정의한다. 『90년대 들어서는 대중소설과 본격소설이 뚜렷이 구분되는 경향입니다. 대중소설은 독자의 폭을 넓히고, 본격소설은 문학의 질을 심도있게 하는 상호보완 작용을 통해 우리 문학은 질적, 양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말처럼 20대시절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진지하게 읽던 30대들의 독서경향은 많이 변했다. 스포츠신문, 잡지 등 보다 빠르고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자텍스트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30대가 갑자기 취향이 변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엔 문학이 힘을 얻던 시대였죠. 그러나 지금은 주매체가 읽을거리에서 볼거리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성씨는 30대 독자들에 대한 기대가 높다. 치열한 경쟁사회에 살고 있는 30대들의 책에 대한 친근감이 여전하고 그들이 책을 정보와 지식을 얻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놓지않는 30대들이 있는 한 문학의 미래도 밝다는 뜻이다.<박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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