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의 시대로 불리는 97년 오늘에도 우리는 한해 20여만명의 젊은이들을 병영으로 들여보내 대한민국의 하늘과 땅, 바다를 지키도록 하고 있다. 4,700만 국민 모두가 평화롭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도 이렇게 든든한 젊은이들이 있기 때문이다.어디 그뿐인가. 공업시설의 45%가 파괴되고, 국민총생산(GNP)의 16.4배에 달하는 220억달러의 엄청난 재산피해를 가져온 한국전쟁을 겪고도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수많은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의 대가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는 얼마전 중부전선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젊은 병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병영생활에 필요한 물자보급 상태나 교육훈련상의 어려움을 확인했다. 과거 내무반에서 흔히 있었던 고참병들의 구타사례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성숙되어 있음을 그들과의 대화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이 남는 것은 병사 개개인이 자신의 위치에 대해 과연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예컨대 『잘 하면 군에 오지 않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필 내가 왜 이런 최전방에 와서 고생하고 있는가』 『누구는 부모가 손을 써 아예 면제를 받았는데…』하며 군복무 자체에 회의를 느끼는 병사들은 없는가 하는 문제이다.
병사들의 군복무 환경이 과거에 비해 매우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느끼는 이러한 주관적인 인식은 겉으로 쉽사리 드러나지 않기 마련이다. 문제는 자신의 군생활에 대해 아무런 열등의식이나 피해의식을 느끼지 않고 나아가 『나는 모든 면에서 우수하기 때문에 현역병으로 선발되어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에 와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병무청장 취임이후 나는 병역의무의 형평성과 공정성, 병역의무 대상자들의 편의성을 위해 몇가지 정책적인 보완을 단행한 바 있다. 대학생들이 학업도중 입대할 경우 전역후 복학시기에 맞춰 입영시기를 선택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입대전과 복학전의 불필요한 공백기간을 최소화했고, 전국 15개 징병검사장에 현대식 의료장비를 도입하여 신체검사의 공정성을 높이는 한편 운용실태를 점검하여 지역간 차별이 없도록 표준화했다. 또 외관상 명백한 경우가 아니면 대체복무형태로라도 병역의무를 똑같이 지게 하는등 병역제도를 개선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만인에게 공평하게 부과돼야 할 병역의무의 형평성을 염두에 둔 조치로, 현역병으로 입영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상대적 피해의식이나 불신감을 근본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방에서 경계근무에 임하는 병사가 『내가 왜 이 자리에 서 있는가』에 대한 확실한 인식과 자부심을 가져야 경계근무의 참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는 병역의무의 형평성에서 출발하며, 또한 병무행정의 가장 핵심적 과제이기도 하다.
병무청은 이밖에도 징병검사시 병역판정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주민대표인 읍·면·동장을 참여케 함으로써 명실공히 병역면제결정을 국민과 함께 내리도록 했고, 가정형편상 일시 휴학해도 제한연령내에 졸업할 수 있다면 졸업시까지 입영을 연기해 줘 본의 아니게 학업을 중단케 되는 피해자를 줄이는 보완책도 시행하고 있다.
이같은 조치들은 결국 우리 젊은 병역의무자들에게 자신의 병역의무 이행이 국가에 의해 얼마나 공정하고 형평성있게 처리되고 있는가를 확신케 해주기 위한 것이다. 아무리 현대화한 장비와 시설을 갖고 고도의 육체적 훈련을 받았다하더라도 휴전선을 지키는 병사 개개인이 자기가 그 자리에 서있는 「존재의 이유」와 형평성에 대해 의구심이나 회의를 느끼고 있다면 그러한 군조직은 전투력이 강할 수 없으며 정작 필요한 어떤 시점에 가서는 힘없이 무너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병무행정은 국가안보의 기틀이다. 국가핵심 에너지인 인력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 배분함에 있어 병사 모두가 『나는 현역병으로서 4,700만 국민의 안전과 생존을 책임지게 되어 보람을 느낀다』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병무행정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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