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성석제 새 소설 ‘아빠 아빠 오,불쌍한 우리 아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성석제 새 소설 ‘아빠 아빠 오,불쌍한 우리 아빠’

입력
1997.06.25 00:00
0 0

◎세상만사가 한바탕 우스개런가/흔히 있을법한 이야기 익살섞인 너스레로 풀어/신명나게 읽다보면 어느새 머리속까지 시원함이작가 성석제(37)씨의 소설을 읽는 것은 오랜만에 만난 가장 친한 친구와 소줏집에서 한바탕 우스갯소리를 나누는 경험과 흡사하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옛일들, 최근 직장에서의 불쾌했던 경험, 짜증나는 세상사, 소식 뜸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떠들다 눈물이 찔끔찔끔 나도록 웃어제끼고는 다음 만날 것을 기약하며 취한 손 흔들고 헤어지는 그런 경험.

그의 새 소설집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민음사간)에도 이런 농담 같은 소설 9편이 실려 있다. 그의 소설들은 독자에게 『나는 이렇게 유별난 생의 경험과 거기서 비롯되는 깊은 사유의 힘, 드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주위에 흔히 있을법한 이야기들을 익살 섞인 너스레로 풀어 놓는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후딱 읽어치우게 된다. 그러나 「어깨에 힘 뺀」 그의 농담은 듣는이들의 가슴과 머리를 시원하게 적셔주는 명징성을 갖고 있다. 신명나게 읽다 보면 어느새 「정화」의 경험을 갖게 되는 것이다.

「통속」은 그야말로 통속적인 세상사를, 통속적으로 쓴 이야기다. 아내의 권유에 따라 이발소 출입을 그만 두고 코털깎이를 사러 신도시 할인매장에 간 「기역」은 십오년 전의 애인 「리을」을 만난다. 그녀는 「기역」의 집요한 공격에도 처녀성을 지키고 가난한 집안 출신의 잘생긴 행정고시 합격생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그때부터 반은 장난삼아 반은 진지하게 서로를 들여다보게 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여관에 들어와 있다. 대낮부터」. 이들의 바람 피우기, 「기역」의 대학동창인 바람둥이 「미음」, 『이렇게 가다간 나라 전체가 큰일이다. 국민 개개인부터 대통령까지, 에어컨부터 발전소까지 한 마음 한 몸으로 조국과 겨레를 위하는 멸사봉공의 자세가 어느때보다 요구된다』며 룸살롱을 출입하는 공직자 「치우」의 이야기다. 작가는 세상의 통속성을 우스꽝스런 어조로 풍자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훈계하지는 않는다.

성씨는 소설에서 「전」의 형식을 자주 취한다. 재래소설의 형식이다. 한 내기바둑꾼의 인생유전을 그린 「고수」, 한량인 「상공」과 결혼한 일본인 첩실의 이야기 「유랑」이 그렇다. 그가 즐겨 소재로 다루는 깡패가 주인공인 「조동관 약전」은 「똥깐」이라는 드잡이질의 귀재의 이야기이고, 「경두」 역시 화자가 「경두」라는 오토바이 배달원 소년의 이야기를 전하는 이인칭 소설.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전」의 형식은 소위 본격문학의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재래적·통속적 변두리 서사양식들을 도입함으로써 탄력적 소설공간을 만들어내려는 작가의 의도다』고 간파했다.

이씨는 그래서 성씨를 「새로운 소설의 영토를 개척하는 성숙한 유목민」이라 말한다. 성씨의 글쓰기가 90년대 한국소설의 눈부신 개성으로 꼽히고 있는 이유다.

『세상에 대해서는 무해무익하자는 게 내 신조야. 왜 시를 쓸까. 뒤떨어지는 걸 좋아해서? 그럴지도 몰라. 그건… 어머니를 향해 손을 뻗는 아기의 마음 같은 거지. 아기는 약하지. 어른들은 그렇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아기는 자기가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냥 손을 뻗는 거야. 엄마도 마찬가지겠지. 그냥 맞잡는 거야』 두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한 성씨는 소설 「비밀스럽고 화려한 쌍곡선의 세계」에서 이렇게 자신의 창작의도를 내비치고 있다.<하종오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